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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니? 호모 커넥티쿠스의 안부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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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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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타인과 연결돼 있기에 존재하는 인간. 연결을 갈망하고 추구하며 연결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존재. 그래서 필자는 인간을 “연결의 인간, 호모 커넥티쿠스(Homo Connecticus)”라 부른다. 오랜 인류 역사상 서로 의지하고 연결돼 있음으로써 우리보다 강한 포식자에 맞설 수 있었으며 위험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던 연결의 인간은 현재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원하는 때 지구 어느 곳 누구와도 간편하게 연결돼 관계를 한없이 확장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네트워크 사회에서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단절돼 있는지도 모른다. 식탁 위에 둘러앉은 식구들이, 한 공간에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각각 다른 세상에 연결돼 단절된 초네트워크의 모순!

연결 1위의 한국이 단절의 상징인 자살률도 1위
서로 안부 묻는 범사회적 캠페인과 지원이 절실

호모 커넥티쿠스가 단절된 가장 극단적인 결과는 바로 자살이 아닐까. 대한민국은 2003년 이래 지금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OECD 평균 12명의 약 2.5배인 29.1명이다. OECD 자살률 1위라 하면 혹자는 선진국과 비교한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전 세계 국가를 포함한 세계보건기구 통계에서도 중남미 기아나에 이어 세계 둘째의 자살률이다.

반면 연결을 위한 우리의 기술 인프라는 최고 수준이다. 퓨리서치센터의 2016년 보고에 따르면 대한민국 스마트폰 사용률은 88%로 세계 중간치 43%에 비해 압도적인 세계 1위이며, 인터넷 사용률 역시 94%로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가장 잘 연결된 사회에서 단절의 극단적 형태인 자살이 제일 심각하다는 모순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자살 연구의 권위자 토머스 조이너 교수가 “좌절된 소속감(thwarted belongingness)”을 자살 요인 중 하나로 설명했듯, 소속감이 상실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관계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태가 네트워크 기술의 홍수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살 예방을 위한 정신의학적·복지제도적인 접근과 함께 관계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행해지고 있다. 대표적 자살 예방 캠페인 중 하나인 호주의 ‘RUOK?’ 캠페인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물음으로써 사회적 관계망을 강화하는 자살 예방을 성공적으로 해 오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행간을 읽으세요(Read Between the Lines)’라는 슬로건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의미에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국가 자살 예방 컨트롤타워인 중앙자살예방센터가 2014년부터 진행해 온 ‘괜찮니?’ 캠페인이 있다. 관계의 회복을 통해 자살을 예방한다는 취지로 엽서 등을 통해 서로 안부를 물으며 관심을 전하는 이 캠페인이 점차 확산되고 있는데, 사회 구성원 간의 연결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자살 예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자살 예방 관련 올해 국가 예산은 외국과 비교할 수 없이 작은 85억원에 불과한 데다 이마저 감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캠페인에 비해 열악한 예산으로 진행하는 이 ‘괜찮니?’ 캠페인이 정부와 범사회적 관심으로 지원될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충격적인 뉴스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괜찮지 못하다. 각종 사건·사고와 사회에 대한 신뢰와 소속감을 약화시키는 소식이 계속 전해진다. 언제 주위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에 경계하고 두려움을 느끼며 사회에 대한 신뢰가 약해져 공동체의 결속은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 약하지만은 않다. 위기의 순간 더욱 단단히 결속돼 극복해 온 호모 커넥티쿠스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극복해야 할 위기의 시간에 직면해 있다. 연결돼야 존재할 수 있는 호모 커넥티쿠스가 서로에게 묻는 안부 인사, “괜찮니? 괜찮으세요?” 지금 바로 옆 사람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작은 시작은 어떨까. 그 관심이 우리 인류가 공동체로 살아온 방식이며 생명의 시작이다.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