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소 외상회담과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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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국제질서에 실질적인 큰 변화는 없겠지만 논의는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동안은 소련이 근년 들어 동아시아 문제에 적극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동향이 「고르바초프」집권 이후 더욱 현저해진데 있다.
84년 5월 김일성의 소련 방문을 계기로 평양-모스크바 관계는 괄목할 정도로 접근돼 있다.
84년 말에 「카피차」 소련 외무차관이 장기간 평양에 머무르면서 국경·교역 등에 관한 현안 문제를 폭 넓게 타결해 주고, 소련-북한 외상 회담의 연례화 등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보도됐다.
지난해에는 북한의 부주석 박성철과 외상 김영남, 총리 강성산이 차례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소련에서는 대규모의 8·15 경축 사절단의 평양파견, 미그-23 전폭기 제공을 비롯한 소련의 대북한 군사 원조 재개가 있었다.
올해 안에는 「리즈코프」 소련 수상과 「셰바르드나제」 외상이 평양을 방문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소련은 중공과도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적극화하는 한편 일본에 대해서도 과감히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소련 당국은 일본이 최신 기술을 제공한다면 2차 대전 후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북방 4개 섬 중 2개를 반환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고르바초프」는 취임 후 「브레즈네프」로부터 물려받은 「아시아 집단 안보기구」 구상을 들고 나와 아시아 국가들의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바 있다.
이 같은 소련의 동북아 정책은 오는 15일 동경에서 열리는 일소 외상회담에서 종합적으로 표현될 것 같다.
특히 이 회담에서는 남북대화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도 논의, 그 결과를 공동성명에 밝힐 것이라 한다.
90여년 전 세기가 바뀔 무렵 일본과 러시아가 이 땅에서 각축을 벌이고 우리 국토의 분할 점령까지 구체적으로 협의하다가 결국 노일전쟁(1904∼5)으로 몰고 갔던 사실을 잠시도 잊을 수 없는 우리에게는 일소 외상의 한반도 논의가 그렇게 탐탁스러운 일은 못된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더구나 일본과 소련은 한반도 분단의 직접 책임자들일뿐 아니라 그들의 협력 없이는 분단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일소 외상회담을 우리는 북방문제에 관한 우리의 의사와 방침을 일본을 통해 소련에 확고히 전달하는 적극적인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리와 소련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교류문제, 남북관계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소련의 대북한 영향력 행사, 우리의 유엔 가입에 대한 소련의 계속된 거부태도 지양, 사할린 교포문제, 그리고 아직도 미결 상태로 남아있는 KAL기 격추 책임 등에 관한 소련의 보장이나 답변을 받아내도록 한일 양국정부의 적극적인 공동 노력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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