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련 사기가 통하는 세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다. 웃을 수 만은 없는 희극같기도 하다.
정변사기라는 행위가 단순한 사기사건과 똑같이 처리될 수 있는 것이고, 사기꾼들의 「쿠데타계획」을 그대로 믿고 자금을 제공한 사람들이 과연 「피해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검찰발표에 따르면 수명의 예비역장교가 주축이 되어 그럴듯한 정치계획을 꾸며 상당한 상류층 인사들에게 들이대고 자금을 얻어냈다.
범인들의 전후 행태로 보면 사기행위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이 비록 군장교 출신이고 정치일정표를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쿠데타를 실행할 의도나 행위가 없었고 받은 돈은 생활비 등 단순한 일상비용으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피해자」들에게 있다. 그들의 자금제공행위는 범인들의 계획이 사기극이 아니고 실현성있는 정변계획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물론 그들중엔 제5공화국이 출범되기 이전의 혼란기에 개입된 사람도 있다.
또 자금을 댔다하더라도 예비역장교들의 쿠데타계획에 동조하여 편승하려 해서가 아니라 만일의 경우 일이 성사되었을 때의 보복이 두려워 응한 사람도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검찰에 따르면 제5공화국 출범이후에도 자금제공 행위는 있어왔고 그것은 성사뒤에 「중책」 또는 「기업특혜」를 보장한다는 약속 하에 이루어졌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우리의 사회가 어느새 쿠데타가 사기행위의 수법으로 등장하고 거기에 다수의「점잖은」 인사들이 현혹되어 참여하는 풍토로 퇴락했다는 점이다.
해방후 40년 사이에 우리는 여러차례의 정변을 겪었고 그럴때마다 사회의 혼란과 경제적 곤경, 정치의 후퇴를 감수해야 했다.
이같은 산경험에서 교훈을 얻지못한다면 우리는 정변의 악순환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변의 근원은 빈곤과 부패와 불안에 있다고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불만과 무질서가 팽배하여 결국은 정변으로 폭발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정변사기극을 비교적 가볍게 처리한듯한 인상을 준다. 관용은 언제나 바람직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기회를 우리는 그런 사기극이 발생하고 유포된 우리의 사회적 배경을 냉철히 숙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시는 이땅에 정변이 없어야하기 때문이다. 비록 사기극이라 해도 그것이 정변을 수단으로 하는 음성적 행위라면 그 어떤 양성적인 사회불안보다도 더 위험시해야한다.
음성적 행위에는 각종의 악성유언비어가 뒤따라 사회적인 질서와 결속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처리에서의 당국의 관용에는 반드시 그런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광범한 사회적·정책적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