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획일적「고교평준화」개선돼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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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은 자기학교에 대해 소속감이나 긍지를 갖고있는 학생이 드물어요. 게다가 일반적으로 고등학교의 평판이란게 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켰다거나 명문대 합격자가 작년보다 몇 명 늘였다는 등의 수치로만 가늠지어지니…교육하기 참 어렵습니다』
40여년 간을 학생들과 살아왔다는 어느 교장의 탄식이다.
평준화이전 까지만해도 학교 나름의 전통이 있었고, 교풍이 있었고, 멋이 있었는데 요즘 그런건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학교가 선발권을 행사하지 못할 뿐아니라 학생이 전혀 자기의 뜻과는 관계없이 3년간 다닐 학교가 정해지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취재팀과 만난 이재옥교사(대전대신고)는 『평준화 이전에는 같은 수준이면 그 학교의 전통, 즉 교풍을 찾아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예컨대 배재는 축구, 양정은 마라톤, 휘문은 야구라든지 진명은 며느리교육에 특색이 있다고 하지않았읍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저 배정을 받았으니 다닌다는 학생들뿐입니다』고했다.
정부길교사(서울성보고) 역시 현재의 여건으로는 학교별로 다양한 전통을 수립하고 이어가면서 그런 분위기에 젖도록하는 교육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사학의 존재 위협>
74년에 시작돼 올해로 11년째가 되는 고교평준화 정책은 고교교육기회 확대, 학교간 격차해소등성과도 적지 않지만 이같은 결정적 부작용 때문에 공격의 대상이 돼왔다.
고교평준화는 학생선발 방법에서 특징적으로 설명된다. 여기서부터 학생이 갖춘 자질이나 학교가 갖은 특성은 완전히 배제된다. 학교의 선발이나 학생의 선택권은 무시되고 학교와 학생은 오직 추첨으로 관계지어진다.
따라서 같은 학교에 들어온 학생이라도 제각각이다. 말하자면 완전한 이질집단이 형성되는 셈이다. 고교교육을 받게된 목적이 다르고, 학력수준이 천차만별이다. 학력수준의 심한 격차는 학교의전통이나 학생들과 애교심 쇠퇴이상으로 문제가 돼왔다.
양영옥교장(신흥고)은 『학습집단의 심한 개인차와 학생들의 능력 차는 학습지도를 어렵게 만들고 이에 따라 학생의 학력이 내려가는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며 『심한 이질집단 속에서 학생들은 학습에 흥미를 잃고, 열등의식을 느끼는 하위권 학생들 사이에 문제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우열반편성도 검토됐으나 열등아딱지가 붙여진 하위권학생들의 참기 어려운 열등감이 유발할 생활지도상의 문제를 우려, 채택되지 못했다. 대신에 교과별·능력별 아동수업을 권장하고 있으나 비좁은 공간에서 과다한 학급당학생을 시간별로 이동시키면서 수업을 진행시키는데 따른 어려움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포괄적인 측면에서도 평준화정책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지적된다. 노종희교수(한양대)는『전체 고교의 50·3%와 고교생의 59·5%를 차지하고있는 사학을 관학과 구별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운영하려고 했던 정책적 발상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며, 『사학이 관학과 똑같이 학생을 기계적으로 「배급」받고, 학생이 가고싶은 학교를 선택 할 수 없다는 것은 사학의 존재가치를 위협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종철교수(서울대)는 『고교평준화시책은 공과의 양면성이 있고 장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나 교육작용의 본질인 학습지도와 생활지도의 효율성제고·수월성의 추구·사학자율성의 보장·재정적 효율성 신장 등 측면에서 결정적인 허점을 갖고있으며 이미 진퇴유곡의 벽에 부닥쳐있다』고 분석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고교교육은 능력과 적성에 맞추어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획일적 평준화는 예가 없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진한 학생엔 불리>
21세기를 향한 교육개혁의 방향정립을 위해 지난3월 대통령직속기구로 발족한 교육개혁심의회가 고교평준화 정책 개선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도 이같은 문제의 심각성 때문이었다.
교육개혁심의회는 지난 5월31일 대전시민회관에서 이에 대한 공청회를 갖고 지금까지 제기돼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생에게는 학교선택권을 학교에는 학생 선발권을 인정하는 내용의「선지원-후선발」입시제도를 채택한다는데 원칙적인 합의를 얻었다.
김윤태교수(서강대) 는 『엘리트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평준화정책은 폐지돼야하다고 하는 반면 평등주의자들은 이제도가 계속돼야한다고 주장하지만 평등 역시 능력에 따른 기회의 평등이어야 하며 우수한 학생들의 능력을 보다 신장시키고 부진한 학생들의 학습결손을 효과적으로 보상하는 교육체제가 반드시 구축돼야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행고교평준화 정책은 고교교육의 보편성과 수월성을 동시에 보장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돼야하며, 전반적으로 재검토돼야한다는 것이다. 고교교육의 기회확대라는 현행제도의 장점을 살리면서 경쟁의 원리를 도입, 학력수준을 높이고 학교와 학생이 다같이 선택권을 행사 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한다.

<선지원 후선발로>
그렇다고 평준화이전상태대로 돌아갈 경우 고교입학을 위한 중학교의 입시준비 교육병폐가 부활 될 것 또한 틀림없다. 김영혁교장(서울서라벌고) 은 『학군내에서 제한된 경쟁을 통해 교육의 수월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보편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학군내 「선지원-후선발」 입시제도로 전환돼야하고 학군은 대학군으로 재조정돼야한다』고 말했다.
교육개혁심의회는 공청회결과와 일반의 이같은 여론을 수렴, 학군내에서 선지원-후선발로 학생선발제도를 바꾸되, 희망하는 사립학교만을 대상으로 시작, 단계적으로 전학교에 확대하는 방안과, 처음부터 모든 학교에 적용하는 방안을 아울러 검토하고있다.
87학년도 시행을 목표로 하고있는 교육개혁심의회의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평준화를 손대지 말고 계속하자는 일부 의견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늦어도 80년대말에 가면 학교가 학생을 선발 할 수 있고, 학생이 학교를 선택 할 수 있는 「능력에 따른 기회균등」의 합리적 교육제도가 고교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만인을 위한 교육은 누구를 위한 교육도 못된다」-획일적 평준화정책은 21세기를 준비하는 고교교육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전망이다.<권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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