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저혈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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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서정돈<서울대의대·내과>】「고혈압보다 저혈압이 더 무섭다」「나는 저혈압이니까 고혈압 걱정은 없다」「나는 저혈압 때문에 쉽게 피곤해져서 일을 계속할 수 없다」 등등 저혈압에 관해 걱정하는 사탕이 제법 많다.
혈압이란 피가 흐르는 압력으로 신체 각 부분에 충분한 양의 혈액을 공급하려면 일정수준 이상의 혈압이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저혈압」이라면, 즉 혈압이 낮다면 혈액순환이 안 되어 큰일나는 것처럼 겁을 먹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혈압이 1백10에 70이라고 하자. 1백10에 70이라면 정상성인의 혈압으로 약간 낮은 편에 속할 따름이다. 약간 낮은 편에 속하는 혈압에 「저혈압」이라는 병명 비슷한 용어를 붙이고 나면 몸의 불편이 모두 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간혹 머리가 아픈 것도, 쉽게 피로해지는 것도 모두 저혈압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증상들은 저혈압과 관계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백10에 70이라는 혈압으로도 정열적으로 일을 하고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실제 통계적으로는 1백40에 90의 혈압을 갖는 사람보다 1백10에 70인 혈압을 갖는 사람의 수명이 더 길다. 저혈압이 병적으로 심한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세를 바꿀 때 즉 갑자기 일어설 때 정상인의 경우에는 곧 혈압이 회복되어 별 지장이 없으나 저혈압환자는 빨리 안돼 어지럽고 심할 때는 쓰러지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병일 정도의 저혈압은 신경계통에 질병이 있을 때, 당뇨병이 심할 때, 또 일부 고혈압치료제의 부작용으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때로는 전혀 특별한 원인 없이 심한 저혈압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있으나 병일 정도로 심한 저혈압 때문에 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
병적인 저혈압의 치료를 위해 음식을 짜게 먹도록 하거나 여러 가지 약물치료도 시도하지만 병적이 아닌 경우에는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다.
쉽게 피로해지고 스태미너가 없는 등의 증상은 오히려 체력과 관계가 더 많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영양식을 섭취하여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면서 체력을 증진시키면 저혈압 탓으로 돌리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병적인 저혈압이 정말 걱정이 될 정도로 실히 불편할 때는 물론 확실한 진단과 대책을 세워야 하겠지만 단순히 약간 낮은 편에 속하는 혈압에 신경을 너무 쓰는 것은 건강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니다. 또 나이가 많아지면 혈압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으므로 오히려 나중에는 고혈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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