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세계 미식을 품다, 눈도 입도 즐겁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 호주 멜버른 맛집 탐방

호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오페라하우스가 중심에 선 시드니항 야경, 골드 코스트의 눈부신 해변, 해안선을 따라 기암괴석이 줄지어 선 그레이트 오션 로드 등이 먼저 생각날 터이다. 캥거루나 코알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하나 이젠 조금 다른 호주를 만날 때다. 호주는 ‘이민자의 나라’란 별칭답게 전 세계 음식을 만날 수 있다. 미식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시드니보다는 호주 남부 빅토리아 주의 최대 도시 멜버른(Melbourne)을 추천한다.
레스토랑만 3000개가 넘고, 도시 외곽에 와이너리도 수백 개가 있다. 닷새 동안 멜버른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쏘다니며 맛집을 찾아다녔다.

골목골목 맛집 기행

기사 이미지

멜버른 시내의 카페.

멜버른에는 일명 ‘미사 거리’가 있다. 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6년)’에서 배우 소지섭과 임수정이 처음 만났던, 그래피티가 화려한 골목이다. 한국인 사이에서 필수 코스로 통하는 이 골목의 진짜 이름은 ‘호시어 레인(Hosier Lane)’이다. 현지인들에겐 맛집 골목으로 알려져 있다. 호시어 레인의 맛집 중에서 스페인 레스토랑 ‘모비다(Movida)’가 특히 유명하다. 2015년에 호주판 미쉘린 가이드 ‘디 에이지 굿 푸드(The age good food)’가 모자 2개(최고 3개)를 부여했다.

기사 이미지

스페인 레스토랑 ‘모비다’의 대표 전채요리 앤초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콤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식당은 큰 창을 통해 그래피티를 보며 타파스(Tapas·술과 곁들여 먹는 전채요리)와 와인을 즐기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셰프가 한국의 멸치젓갈처럼 짭쪼롬한 앤초비(Anchovy)와 부드러운 생선 알이 어우러진 앤초아(Anchoa)를 추천했다. 의외로 조화로운 맛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에 빅토리아 주에서 생산하는 쉬라즈(Shiraz) 품종의 와인 크레이글리(Craiglee)를 곁들이니 환상적인 궁합을 이뤘다. 모비다에서 일하는 한국계 셰프 마크 킴(30)은 “스페인 출신의 셰프가 전통 요리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요리를 내놓아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남미식 전채요리인 세비체.

라이브클럽이 몰려 있는 골목 AC/DC 레인에서는 페루 레스토랑 ‘파스투소(Pastuso)’가 유명하다. 남미 요리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식당으로 통한다. 시드니에 있는 레스토랑 ‘모레나(Morena)’로 명성을 떨친 페루 출신 알레한드로 사라비아 셰프가 두 번째로 멜버른에 낸 식당이다. 술에 계란 흰자 거품과 레몬주스를 넣은 식전 칵테일 ‘피스코 사워(Pisco sour)’를 한 모금 마시자 식욕이 돋았다.

전채요리는 세비체(Ceviche)였다. 페루 뿐 아니라 남미에서 흔하게 먹는 음식으로, 해산물을 회처럼 얇게 떠 새콤한 양념에 재운 맛이 우리네 회무침과 비슷했다. 종업원 페르난도가 “매콤한 양념으로 아시아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추천한 알파카 등갈비도 맛봤다. 낙타과 동물인 알파카의 식감은 쇠고기와 비슷했고, 양념은 우리의 매운 갈비찜과 흡사했다.

기사 이미지

‘모레나’의 대표 메뉴 알파카 등갈비.

다채로운 요리문화 발달한 이민의 역사

기사 이미지

멜버른은 호주의 신흥 미식 도시다. 세계 요리를 맛볼 수 있는 3000여개의 식당이 있다. [호주 빅토리아 주 관광청]

멜버른 도착 사흘째. 이색적인 해외 음식을 경험하는 것도 좋았지만 차츰 익숙한 맛이 그리워졌다. 퓨전 일식집 ‘슈퍼 노멀(Super normal)’을 찾아갔다. 한식당을 제쳐 두고 슈퍼 노멀을 찾아간 건, 한국의 고추장·간장과 비슷한 양념을 활용한 요리로 주목을 받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데친 오징어를 고춧가루로 양념해 깻잎과 함께 낸 요리는 분식집에서 먹는 오징어볶음과 비슷했고, 고급 생선인 달고기를 구워 간장과 미역으로 양념한 요리도 친숙했다. 고급 한정식을 대접받은 기분이었다.

호주에 다채로운 요리 문화가 발달한 배경에는 이민의 역사가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호주는 인구 2300만 명 중 45%가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외국 출신인 다민족 국가다. 18세기 영국은 미국을 대체할 죄수 유배지로 호주를 주목했다. 영국이 전쟁 포로와 죄수, 국민 일부를 이주시킨 것이 호주 이민 역사의 시작이었다. 19세기에는 유럽과 미국, 중국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태평양을 건너 호주에 상륙했다. 이른바 ‘골드 러시’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호주는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였다.

그래서 멜버른과 같은 호주의 대도시에는 특정 국가의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운집한 지역이 많다. 이탈리아 파스타 전문 레스토랑이 줄지어 선 라이곤(Lygon) 스트리트, 그리스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리치몬드(Richmond) 지역, 중국과 동남아시아 음식을 파는 리틀 버크(Little Bourke) 스트리트 등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호주가 아니라, 이탈리아·그리스·중국을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기사 이미지

●여행정보=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다. 호주 남부에 위치한 멜버른은 7∼8월 기온이 꽤 쌀쌀하다. 최고기온 15도, 최저기온 5도 정도다.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한국에서 호주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아시아의 다른 도시를 경유하거나, 호주 시드니까지 간 뒤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번에는 캐세이패시픽 항공을 이용해 홍콩을 경유했다. 인천∼홍콩 3시간 40분, 홍콩∼멜버른 9시간이 걸렸다. 호주정부관광청(australia.com), 빅토리아 주 관광청(kr.visitmelbourne.com) 홈페이지 참조.

글·사진=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