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가 말하는 나의인생 나의건강|윤목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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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교외 목장.
젖소 30여마리가 한가로이 풀을뜯는 가운데 노인 한분이 젖소들을 유심히 살피고있다.
우리나라 축산학계의 태두로 서울대농학장과 건국대축산대학장을 역임한 윤상원옹 (85·학술원원로회원)이 오랜만에 낙농현장에 나와 학문적 또는 기술적으로 직접지도를 하는 중이다.
『식생활 패턴이 많이 바뀌었어요. 벼농사만 고집하지말고 다양한 동물성 단백질원 확보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해요.』
일찌기 33년에 미국텍사스농공대를 나와 우리 축산분야의 육성을 위해 50여년간 헌신해온 윤옹은 요즈음도 학술세미나와 학술원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는가 하면 틈틈이 낙농현장에 나가 후학들이나 현장 실무자들을 독려하고 도움말도 주는등 축산현역의 손을 놓지않고 있다.
5척단구에서 굵직한 음성과정정함이 샘솟는 까닭은 무엇인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발을 디딘곳이 위경북도 명천이었지. 거기서 해방될때까지 종양책임자로 있었는데 양들과 함께 산야를 10여년 누비다보니 나도모르게 건전한 신체를 갖게딥디다.』
그때의 습관이 몸에 밴 탓인가.
윤옹은 요즈음도 틈나는대로서울근교의 목장들을 순회하면서 직접 젖소의 젖도 짜보고 돼지의 발육상태도 점검하는 한편 현장실무자들의 의문사항을일일이 풀어주기도 한다.
『은퇴했다고 칩거하고 있으면 자꾸만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갈 것만 같더군. 현장에 나가면 언제나 힘이 솟지. 구수한 쇠똥내음·풀내음이 어울려있는가운데 동물들을 보살피노라면우선 내자신 힘든줄 모르고 몰입할 수있고, 때로는 아직도 일을할수있다는 것이 무한한 기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연신 젖소의 몸통을 쓰다듬어주는 윤옹의 모습에서 작위적 권위의 그림자는 찾아볼수없었다.
『섭생에 대해서 묻는 사람들이 꽤 되는데, 나는 사실 먹고싶은 만큼 많이 먹는 체질이요. 혹자는 모자란듯 먹는 것이 몸에 무리가 안가고 장수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말이야. 그대신 많이 움직이면될 것 아니오.』
최근까지도 담배를 즐길정도로 일견 역설적 건강비법을 설파하는 윤옹이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정직·인내·근면」의 좌우명을 70여년동안 지켜을 정도로 「퓨리턴」적인 정신을 꼿꼿이 견지하고있다.
『요즈음 학술세미나에 나가보면, 후학들이 유전공학등의 첨단기술을 이용해서 축산발전을꾀하는등 이 분야도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더군. 이 늙은이도 최신학문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책도 들쳐보고 정리도 해본다오.』
반백년간의 학문여정에 더 보탤 그 무엇을 찾느라 하루중 오전 두세시간은 반드시 서재를 찾는다는 윤옹은 3년전 부인과 사별하고 외아둘 주병씨 (43·사업)와 함께 압구정동에서 살고 있다. (글 윤재석 기자 사진 조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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