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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이 침수돼도 좋다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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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29면

서울에서 며칠간 머물던 지난달 어느 날, 친한 친구의 음악회를 구경 가려고 호텔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예술의전당으로 가주세요” 하는 나의 요청에 기사님이 물으신다. “공연 보러 가시나 봐요?” “예, 맞아요, 연주회요.” “클래식음악, 뭐 그런 거죠? 그런 연주회들은 엄청나게 비싸죠?”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간 미소를 띠는 그분의 질문에 나는 옳다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 제가 가는 음악회는 특별히 가벼운 성격의 공연이라 전석이 겨우 만원인걸요.” 룸미러에 비친 기사님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나 싸다고요? 에이… 이 음악회만 그런 거죠? 보통은 훨씬 더 비싸죠?” “예, 사실 이 음악회가 조금 많이 싼 편이기는 하죠. 하지만 가장 싼 표값이 3만원에서 시작하는 다른 공연들도 아주 많아요!”


내 대답에 날선 질문이 이어졌다. 가장 싼 표값이 3만원이면 그럼 가장 비싼 표값은 얼마냐고. 내가 적게는 5∼6만원에서 비싸게는 30만원도 간다고 답하니 기사님이 그제야 신이 나서 말하신다. “것 봐요, 얼마나 비싸. 그럼 3만원짜리 표는 무대가 잘 보이지도 않는 안 좋은 자리에서 관람하는 걸 테지, 그런 것은 본다고 할 수도 없지.”


그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도 꼭대기 좌석에서 바라보는 무대의 크기를 떠올리다 다소 말문이 막힌 나에게 기사님이 말을 이어갔다. 무슨 공연을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우리 같은 서민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일단 뭐가 좋은 줄 알고 골라서 찾아가겠으며, 만약 간다 해도 무얼 입고 가야 하는지, 행여나 관람하다 실수라도 하면 무슨 창피겠느냐, 차라리 처음부터 가지 않는 편이 나을 거다, 등등….


하지만 진짜 충격은 그 다음 얘기였다. “오죽하면 몇 해 전 우면산 홍수로 예술의전당에 침수사고가 났던 적이 있었죠? 그때 우리 같은 서민들은 다 좋아했다니까? 우리는 생전 한번 구경도 못 가는 곳이 저렇게 으리으리한 것이, 아 글쎄, 얄밉잖아요.”


아무리 사촌이 땅 사는 꼴 못 보는 게 사람 심리라지만, 얼마나 얄미우면 평생 원수 진 적도 없는 남의 집 물난리가 깨소금 맛이었을까. 중요한 건 결코 표값이 아닌 것 같았다. 택시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쯤, 음악당 외벽에 붙은 모 사립 교향악단의 ‘1000원 콘서트’ 포스터를 보고도 나는 차마 “기사님, 저것 보세요. 하다못해 1000원짜리 콘서트도 있는데요?” 라는 항변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하긴 내가 처음 독일로 유학 가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학생이면 2만원도 안 되는 돈을 주고 볼 수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값싼 티켓 정책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다니던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매주 월요일 오후 1시에 열리는 학생음악회가 동네 사람들로 꽉 차는 풍경이었다. 그 음악회뿐 아니라 클라스음악회, 졸업연주 등 시시콜콜한 발표회 모두에 꼭 한두 명의 일반인 관객이 찾아오는 그 풍경.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모객을 하기에 그게 가능하냐 묻는다면, 내가 아는 유일한 학교 측의 홍보는 학교 앞 게시판에 달랑 한 달간의 학교 행사 일정표를 때마다 갈아 거는 것뿐이었다. 어쩜 그 일정이 담긴 행사 표를 미리 신청한 동네 시민들의 집으로 매달 발송하는 수고 정도는 하는지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지만.


따지고 보면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그들이 300년 전 활동하던 곳에서 오늘날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로부터 몇 천 ㎞ 떨어져 그들의 이름을 처음 들은 지 100년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똑같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으랴. 하지만 중요한 건, 남의 나라 음악이라 낯설고 멀게 느껴지면 그뿐이지 어째서 쫓아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이 있는 음악이라 생각하느냔 말이다. 똑같은 먼 나라 음악이라고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까.


사실 진짜 비싼 건 크게는 몇 만 명까지 수용 가능한 체육관에서 가수가 보일랑말랑한 자리마저 몇 만원을 호가하는 대중음악인들의 공연인데 말이다. 클래식음악이 대중음악보다 이해하기 어렵고 그 깊이를 따라가기에 오랜 시간이 걸려서일까. 그렇다면 아트록은 이해하기 쉬운가? 헤비메탈은?


그 택시기사님의 연배라면 열 사람 중 아홉은 분명 요즘 10~20대가 열광하는 ‘쇼미더머니’만 봐도 저게 무슨 음악이냐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우리 같은 서민’들과 상관없는 그네들 놀음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중예술인들이 아무리 하루에 수억씩을 벌며 걸어 다니는 1인 기업이라 불려도, 정작 ‘귀족’ 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색안경 낀 눈치를 받는 건 공연 하나에 적게는 몇 백만원의 연주료도 제대로 못 받는 클래식음악인들이다. 무엇 때문일까.


물론 그 철벽 같은 담장 속에 갇혀서 얄미워는 하지만 부러워도 하는 담장 밖의 시선을 받는 것이 즐겁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 클래식음악가들 스스로가 먼저 이 모든 책임을 통감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리라. ‘문화’라는 것이 ‘문화’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최소한 예술의전당에 물난리가 났을 때 모든 서울 시민들이 조속한 복구를 위해 마음을 모으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택시기사님의 마지막 한마디는 이랬으니까. “그래요, 아가씨 말대로 나도 언젠가 한번은 공연을 보러 가보고 싶네요.”


손열음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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