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압력솥·백팩 검색하면 테러 용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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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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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 사회
프랭크 파스콸레 지음
이시은 옮김, 안티고네
344쪽, 1만6000원

미국 대형쇼핑몰 타겟에서 아연·마그네슘 보충제, 기저귀도 담을만한 큰 손가방 등을 산 20대 여성은 원하지 않아도 임신 관련 상품 전단을 받는다. 쇼핑몰 고객관리 알고리즘이 임신 가능성을 87%로 추정한 결과다. 인터넷에 ‘압력솥’과 ‘백팩’을 각자 검색했다 경찰의 급습을 당한 부부도 있다. 둘 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 쓰인 물품이다. 빅데이터와 인터넷, 디지털 신기술이 낳은 감시사회의 놀랍고 섬뜩한 단면이다.

 이 책은 신기술이 한층 투명한 사회를 만들 것이란 낙관주의와 정반대 현실을 파헤친다. 우리 일상은 다양한 데이터로 상시 노출되고 수집되는 반면 이 데이터를 누가 어떻게 쓰는 지는 여간해선 공개되지 않는다. 일방향의 투명성이다. ‘중립성’‘개인화’를 내세우는 구글 검색 순위나 페이스북 뉴스피드 노출 순위, 애플의 앱 심사기준도 그렇다. 억울한 사례가 보도되야 그 일단이 드러나는 정도다. 책 제목의 ‘블랙박스’는 안에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를 검은 상자, 즉 비밀주의를 가리킨다.

법학교수인 저자는 디지털 평판과 검색, 금융 등 세 초점에서 비밀주의의 양상과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2008년 세계적 위기를 초래한 미국 금융상품, 초단타 매매 등과 결합해 실질적 생산성과 유리된 금융시장을 맹렬히 비판한다. 이를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현실로 치부하는 대신 생각의 다른 틀을 제공한다. 거칠게 응용하면 철도·전신이 그랬듯 검색 같은 중요 서비스를 공공재로 관리하지 말라는 법도, 테러 감시에 들이는 막대한 노력이라면 복잡다단한 금융상품을 규제 못할 리도 없다. 관건은 알고리즘 뒤에 숨은 감시자를 감시하려는 사회적 의지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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