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섬나라행 티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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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민들이 결국 EU 탈퇴를 선택했습니다. 여론조사나 도박업체의 베팅은 잔류쪽으로 기울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반대였습니다. 이민에 대한 거부감, 상류 엘리트들에 대한 반발, 경제적 격차에 대한 불만, 대영제국에 대한 막연한 회고정서가 골고루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세계경제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신고립주의와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유럽의 결속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이외에서도 EU 이탈 움직임은 점점 강해질 전망입니다. 미국의 대선, 일본의 참의원 선거, 내년 프랑스 대선 등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그러나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고립주의가 과연 대안이 될까요. 참 얄궃게도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고 한 게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시인 존 던입니다. 브렉시트는 외딴 섬나라로 향하는 티켓으로 보입니다.

지켜보던 시장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코스피·코스닥은 물론, 세계주가가 폭락했습니다. 파운드화는 30여년만의 최저치로 추락했고, 지구 반대편의 일본에선 엔화가 폭등했습니다. 브렉시트로 결정될 경우 또 한 차례 블랙프라이데이가 올 것이라는 소로스의 경고가 으시시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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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브렉시트는 영국의 국내문제를 넘어 전세계인의 호주머니를 털어대는 사안으로 번졌습니다. 잔류냐 탈퇴냐, 하는 불확실성은 어쨌든 걷혔다고도 합니만, 오히려 분명해진 것은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이 더 자욱해졌다는 것 아닐까요. 그나저나 브렉시트가 우리 금융시장에 큰 영향 못 줄 것이라고 낙관하던 전문가들은 다 어디 갔습니까.

이번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 언론들은 잔류파와 탈퇴파로 나뉘더군요. 대중지들이 주로 탈퇴 편에 섰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선동적이고 편파적인 보도가 여론을 적잖게 움직였던 모양입니다. '문 열어! 우리 EU에서 왔단 말이야' 'EU에 남으면 영국은 곧 독일연방으로 흡수된다' '여왕은 탈퇴를 지지한다'… 이런 자극적인 제목과 의도적인 오보는 근소한 차이로 접전을 벌이는 선거에서 표심에 큰 영향을 줍니다. 언론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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