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그릇의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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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대원<홍익대 교수>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창성 있는 우리 것을 창조했던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움은 그전부터 많은 공예미술품중에서 늘 발견할 수 있었다. 고려청자 같은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리고 분청사기·백자·청화백자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도자기 미술의 진가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며 세계 도자기 미술사에 있어서의 독자성과 우수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이러한 문화유산을 계승받은 후손들이 스스로 미리미리 그 진가를 깨닫고 간직했더라면 그 동안 많은 희귀 문화재의 해외유출을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려조 불화나 고려조 나전칠기 같은 것의 일품이 거의 일본에 유출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우리 후손들이 깊이 반성해야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앞에 언급한 우리의 도자기 미술품들은 실은 의식주 문화 중 식생활 문화의 일부를 이루는 식기에 속하는 것이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나는 늘 놋그릇을 써왔던 선조들의 예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운 계절에 사기 식기를 쓰고 추운 계절이면 놋그릇을 집집마다 써왔던 것을 보아왔다. 불행히도 해방전 태평양전쟁 말기에 와서 일본인들은 이것을 전략물자라는 명목 하에 전국 가가호호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공출해갔던 사실은 그들의 단말마적인 발악상의 한 표본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서글픈 것은 해방이후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이 이 오래된 식생활의 도구를 헌신짝같이 버리는 큰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주발·대접·양푼·수저·화로 등 그 많은 종류와 수량들은 무게로 달아 팔리고 극히 미미한 것만이 골동상점의 구석에 쌓여 푸대접을 받아왔다.
거의 헐값으로 많은 외국인들의 장식품으로서 팔려 나갔다.
다 없어지고 나니 요새는 국내에서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차츰 없어진 놋그릇을 찾으며 재현시키는 신제품을 가끔 볼 때 다시 한번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음식을 먹고 있다. 그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그릇을 버리고 맛없는 음식을 먹고들있다. 닦기 힘든 놋그릇을 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음식의 전통 운운하고 있는 자가당착을 깨달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집집마다 놋그릇을 닦으며 겨울을 맞던 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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