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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1000㎞ 올라갔다” 다음날 “1400㎞ 이상이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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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가운데)이 22일 강원도 원산 인근 발사장에서 ‘중장거리 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뒤 웃고 있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문책설이 돌았던 김낙겸 전략군사령관(왼쪽 원 안) 등 수행원들이 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1000㎞까지 날아갔다”(22일 오전), “1400㎞ 이상 올라간 게 맞다”(23일 오전)

북한 각도 높여 발사한 이유는
일본 자극 않고 거리 조정 기술 과시
정상각도 땐 사거리 4000㎞ 될 수도

북한이 2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무수단 미사일(북한 이름으론 화성-10)이 고도 1413.6㎞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자 군 당국도 말을 바꿨다. 전날(22일) 일본 방위성 발표와 마찬가지로 “1000㎞”라고 했던 데서 “1400㎞ 이상 올라간 게 맞다”(합동참모본부 관계자)고 했다.

군의 탐지능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익명을 요구한 합참 관계자는 “우리 군의 탐지능력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이라며 “지난 2월의 탐지 모드를 바꿔 이번에는 모든 궤적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놀라운 건 장거리 관측레이더를 보유하지 않은 북한이 1413.6㎞라며 소수점까지 정확히 언급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미사일에 비행기록장치, 즉 블랙박스나 지상과의 교신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탑재했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미사일과 핵 전문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중국도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때 탄두 부분에 폭약 대신 계측장치를 실었다”며 “북한 역시 비행속도, 자세, 고도, 마찰열 등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계측장비를 탑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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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이 최고 고도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해상에 떨어지기 직전에 탄두 부분을 분리시켜 계측장비를 수거해 분석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무수단 미사일이 대기권에 재진입한 뒤 미사일 파편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레이더에 포착됐다고 한다.

논란의 핵심은 북한의 이번 시험발사가 성공이냐 실패냐다. 북한이 고도와 사거리까지 자세하게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발사가 성공했음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반면 합참 관계자는 정례브리핑에서 “성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며 “실전 비행능력이 검증돼야 하며 최소 사거리 이상 정상적인 비행 궤적을 그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각(高角·lofted, 미사일이 날아가는 각도를 높게 조절하는 것) 발사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최소 사거리인 500㎞에도 못 미치는 400㎞만 날아가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대해서도 “북한의 발표일 뿐”이라며 “우리는 북한이 재진입체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공은 아니지만 실패로도 단정할 수 없다는 뉘앙스다.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탄착 예상 수역에 측정 선단이 대기하며 분석을 해야 한다”며 “아직 초보적 시험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 군 당국은 공동으로 정밀분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고각 발사를 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우선 지리적 한계다. 정상 궤도로 3000~4000㎞ 비행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하려면 동해가 유일한 선택지인데 일본이 버티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에 요격 태세를 갖추도록 지시했다. 고각 발사를 택한 건 그 때문이라고 한다. 미사일의 자세각을 높여 최고 고도를 달성하면 사거리가 짧아져 북한 영해에 떨어진다. 대신 엔진 추진력 등을 역산하면 정상 발사각을 유지할 경우 최고 사거리를 보장할 수 있다.

군 출신인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발표대로 최대 고도 1413.6㎞를 달성했다면 정상 궤도로 비행 시엔 3000~4000㎞까지 가능하다”며 “고각 발사는 고도를 최고치로 끌어올려 과부하를 거는 것인 만큼 정상 궤도 발사보다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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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제사회와의 마찰을 피하면서 사거리 조정 기술까지 보유했음을 선전해 국제사회의 허를 찌르기 위한 노림수”라고 했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수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실험하기 위해 고각 발사를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춘근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데이터 확보를 위해 자기 영해에 낙하하는 고각 발사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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