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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묻고 토니 남궁 답하다 “통일 환상 없지만 평화 공존은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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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지혜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상선
김상선 기자 중앙일보 부장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 대 북한’의 강 대 강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강력한 제재에 북한은 추가 도발 위협으로 맞서는 중이다. 22일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 무수단 2발을 발사했다. 같은 날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은 6자회담 당사국들의 수석·차석 대표가 모인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서 “6자회담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토니 남궁 전 미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이 한국을 찾았다. 1990년대부터 평양과 워싱턴 간 비밀 접촉을 숱하게 성사시킨 유일한 중재자(middle man)다. 북한 외무성 파워엘리트들과 20년 넘게 친분을 이어오고 있는 그를 김영희 대기자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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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60번 이상 방문하고 북한 엘리트들과 20년 이상 친분을 이어 온 토니 남궁 전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부소장은 “남북이 서로 경계하는 한 진정한 한국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진 김상선 기자]

김영희= 북한을 몇 번이나 방문했습니까.
토니 남궁=60~65번 정도 됩니다.
김= 제3의 장소에서도 특히 외무성 관료들을 꽤 자주 만난 것으로 아는데요.
남궁=예. 1990년대에는 강석주(전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5월 사망)가 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북한 안팎에서 김계관(외무성 제1부상)을 많이 만났습니다. 보다 최근에는 이용호(외무상), 이근(주폴란드 대사), 한성렬(외무성 미국국 국장), 최선희(미국국 부국장)가 있습니다. 모두 약 25년 동안 잘 알고 지냈어요.
김=그들의 신뢰가 깊군요.
남궁=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90년 처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제게 두 가지 극비사항을 워싱턴에 전달해달라고 하더군요. 하나는 북한이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어요. 그때로서는 엄청난 기밀사항이었지요. 그 후에도 비슷한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김=북·미 간의 1.5트랙(반관반민·半官半民) 회동 성사에 비선(秘線·back channel)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몇 번이나 될까요.
남궁=25년 동안 15~20번 정도 될 겁니다.
김=주로 어디서 1.5트랙 대화가 진행됐습니까.
남궁=빌 클린턴 행정부 때는 모든 1.5트랙 만남이 미국 내에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북·미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다른 곳에서 만났습니다. 지난 1월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있었습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베를린, 싱가포르 등지에서 만났고요.
김=다음 1.5트랙 대화는 언제 열릴 것으로 예상합니까.
남궁=8월 중에는 성사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김=이런 1.5트랙 대화가 미국 입장에서는 전직 관료들이 나가기 때문에 ‘트랙2(민간 접촉)’라고 하지만, 북한이 보기엔 항상 ‘트랙1(정부 간 접촉)’ 차원의 대화 아닙니까.
남궁=정확한 지적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항상 학자 자격으로 오긴 하는데, 그때마다 직함이 달라집니다. 군축평화연구소 , 미국연구소 소속이라고 많이 씁니다. 같은 사람들이 모자만 바꿔 쓰고 나옵니다.
김=이용호와 친하다고 했는데, 그가 북한 외무상이 됐습니다. 남궁 박사가 북한에 갈 때 안내를 도맡은 최선희도 외무성에서 요직을 맡는다는 소문입니다. 앞으로 남궁 박사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남궁=제가 이 일을 오래 해왔는데, 후보위원이라고는 해도 외무상이 당 정치국 멤버가 된 것은 처음입니다. 이는 외무성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란 점을 시사하죠. 그래서 제 역할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닙니다.

김계관·이용호가 영향력 발휘
황병서·최용해는 보좌역 불과
외교부에 권한·책임 모두 줘야
오랜 교분으로 적합한 대화 채널

남궁=이용호가 정책 입안에 있어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그와 관련해 김정은의 지근거리에서 일하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2013년 3차 핵실험 직전 김정은이 주재한 ‘국가안전 및 대외부문 일꾼협의회’ 사진을 보면 김계관이 김정은의 바로 왼쪽에 앉아 있습니다. 황병서(인민군 총정치국장)와 최용해(당 중앙위 부위원장)는 그 반대편 거의 끝에 앉아 있고요. 이 사진이 곧 외무성의 고위층이 북한 지도부와 아주 가까운 사이란 걸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김=그 말은 대외정책에 있어선 황병서나 최용해 같은 군부나 당 인사가 아니라 김계관·이용호 등 외무성 인사들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입니까.
남궁=예. 개인적인 보좌진, 측근이란 사람들은 옆에 있다가도 지도자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 조직의 리더십은 수십 년이 지나도 유지됩니다. 일본의 외교정책을 만드는 외무성 내 도다이(東大·도쿄대) 출신 관료들을 보세요. 은막 뒤엔 항상 그들이 있습니다. 제 생각엔 김계관과 이용호가 북한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김=현재 남북 관계는 매우 경색된(frozen) 상태로, 돌파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용호와 외무성의 주도로 북한이 대화를 하자는 쪽으로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봅니까.
남궁=북한이 대화 모드로 전환할 수 있다고 봅니다. 표현이 좀 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외무성은 한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거의 강박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외무성은 남북 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봅니다. 그래서 한국 문제와 미국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금강산 관광이나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한국이랑만 거래를 해도 되지만, 안보 문제에는 미국이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북한 외무성은 남·북·미라는 큰 3자 구도 속에서 한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이게 이용호의 접근법으로 보입니다. 이용호는 매우 창의적이고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입니다. 한국은 이런 점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김=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남북 관계는 최저점까지 떨어져 있습니다. 돌파구를 찾으려면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궁=우선 외교부에 권한을 줘야 합니다. 외교부 관료들이 북한 외무성의 카운터파트들과 직접 이야기를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비밀 접촉이든, 비공식 접촉이든 어떤 형식이든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정부는 외교부를 정책 생성 기관이 아니라 정책 집행을 위한 도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외교부에 권한과 책임을 모두 주란 뜻인가요.
남궁=그렇습니다. 남북의 외교부 고위 관료들은 과거 비밀리에 자주 만나왔습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잘 알고,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는 사이였어요. 조평통과 통일부의 아·태 라인 사이엔 없는 관계입니다. 훈련받은 직업 외교관들이 핵, 미사일, 평화협정 등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기에 적합한 채널입니다.
김=내년에 한국 대선이 있습니다. 새 대통령이 남북 관계의 변화를 꾀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남궁=중요한 것은 핵·미사일 개발 문제를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하나의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의 역대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북한 붕괴론(Collapsism)이 고개를 들고. 김정은이 제재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까.
남궁=제 살아생전에 북한이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과거에도 북한이 무너질 것이란 예측이 수차례 나왔지만, 북한은 70년을 버텨왔습니다.
김=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당분간 큰 대북정책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좋게든 나쁘게든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요.
남궁=트럼프는 당선된다면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청해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한다면, 북한 사람들이 그를 아주 쉽게 쥐고 흔들 겁니다. 트럼프는 자신이 뭐에 얻어맞는지도 모르고 당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회담에서 영속적인 해결책이란 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압박책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클린턴도 재선이 된다면 2기에는 다른 접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말이죠.
김=북·일 관계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북·일 관계는 어떻습니까.
남궁=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 문제에서 성과를 내려면 외무성의 공식 채널보다 비선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과정에서 백 채널로서 관여했습니다. 하지만 양측 사이엔 근본적인 이견이 있습니다. 북한은 납북자 문제를 북·일 관계 정상화 문제와 함께 패키지로 한꺼번에 논의하자고 하는 반면 일본은 이를 분리해 우선 납치자 문제부터 해결하고 관계 정상화를 논하자는 입장입니다.
김= 백 채널의 장단점은 뭐가 있습니까.
남궁=단점은 민간 섹터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정부가)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장점은 이들을 이용해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거나 생각을 전달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정부가 공식적으론 이를 부인할 수 있단 점입니다. 외교부와 외무성의 카운터파트들이 비밀스럽게 접촉하는 데 있어 내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김=남궁 박사는 어떻게 상하이에서 태어나셨죠.
남궁=할머니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소래교회)가 세워진 황해도 장연군의 소래 출신입니다. 할아버지 남궁혁 선생은 평양 장로회 신학교 교수였습니다. 2차 중일전쟁(1937년 발발) 이후 일제는 교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했는데, 할아버지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마침 할아버지의 친구였던 김구 선생이 초청을 해서 할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상하이로 갔습니다.
김=황성신문을 발간한 남궁억 선생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남궁=남궁억 선생과 제 증조부가 사촌지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배재학당에서 수학한 뒤 미국으로 유학 가 프린스턴 신학교에 다녔고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났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도 할아버지에게 영어를 배웠습니다.
김=평양과 서울, 워싱턴을 오가는 중개인으로 활동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남궁=통일이 금방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공존은 또 다른 문제이지요. 남북이 서로 경계하는 한 진정한 한국의 통합이란 불가능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꼭 지키고자 하는 제1의 원칙은 어떤 상황이든 제 개인적인 관점은 배제하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정직한 중개인(honest broker)의 역할입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토니 남궁은 …

미국 내 저명한 아시아 전문가이자 ‘북한통’이다. 중국이 공산화되며 상하이를 떠나 일본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시간주 캘빈 칼리지를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는 버클리대에서 아시아 역사학으로 받았다. 머레이 힐 컨설턴트를 설립해 정부와 기업 지도자들에게 아시아 문제를 조언해 왔다. 북·미 간 1.5트랙 대화 개최에 주로 관여하고 있다. 2013년엔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방북을 물밑에서 성사시켰다.

정리=유지혜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