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백지화, 백지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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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공항 확장안에 대해 영남권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구의 매일신문은 오늘 1면을 백지로 냈더군요. 기사는 물론, 광고도 없었습니다. 밑부분에 검은 색 띠에 흰 글씨로 ‘신공항 백지화,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는 문구만 넣었더군요. 신공항 백지화로 가슴이 무너지고 통분에 떠는 대구경북 시도민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합니다.

지역언론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의 제스쳐입니다. 이게 전국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줄지는 의문이지만, 지역민심만큼은 분명히 보여줬습니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이 다시는 지역갈등 구조를 유발하는 약속이나 선거공약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더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말은 매우 설득력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청와대 설명이 의외였습니다. 김해공항 확장은 곧 '김해 신공항'이므로 공약을 지켰다는 얘기입니다. 정연국 대변인의 말이므로 청와대의 입장이자 대통령의 의중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말이 지역 민심을 더 자극하고 말았습니다. 영남을 바보로 아나, 하는 불만이 터져나옵니다. 어설픈 궤변이 지역을 더 자극한 셈입니다. 공약이란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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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검토해 보니 못 지키겠다, 하며 성실하게 설명하고 진지하게 사과하면 됩니다. 결정을 잘 내려놓고도 왜 비실비실 궁한 태도를 보이는지요. 잘못된 약속은 무리하게 지키는 것보다 떳떳하게 안 지키는 게 낫습니다. 이번 일은 극도의 정치성이 지배하다 종국엔 정치성이 배제된 채 합리성이 최종결론을 낸 희귀사례(박형준 성균관대 교수)입니다. 그 합리성을 부각하면 국민적 이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영란법의 경제효과에 대한 우려가 중앙은행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이주열 한은 총재는 구조조정과 함께 김영란법을 불확실한 대내 여건의 하나로 꼽았습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다면 민간소비에 분명히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소비 악화의 요인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선물이나 식사접대는 증여경제에 해당합니다. 이게 김영란법으로 사라지거나 확 줄어들고, 그 공백은 실수(實需)경제로 대체됩니다. 규모로는 실수가 증여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증여경제의 공백을 투명사회라는 자부심으로 메워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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