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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미로비 방법을 달리 해야한다|젱킨즈법안 하원통과 계기 긴급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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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하원의 젱킨즈법안이나 상원의 더몬드법안이 미의회내에서 토론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며 한국은 그 동안 막대한 로비비용을 쓰면서 대미활동을 어떻게 해왔기에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간 4백만∼5백만 달러를 들인 흔적이 최근 일련의 대한불이익정책, 예를 들어 컬러TV·철강의 수입규제와 부가관세부과법안 상정,담배·보험·지적소유권 개방압력,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섬유류 및 신발류 수입규제법안에 이르기까지 단 한군데서도 효력이 나타났다고는 볼 수 없으니 우리의 대미로비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0일 미하원본회의에서 벌어진 약2시간에 걸쳐 진행된 젱킨즈법안에 대한 민주-공화의원들의 찬반토론에서도 그런 면이 단적으로 부각됐지요. 1백여명의 의원들이 나서 저마다 나름대로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열변을 토했는데 이 자리에서 한국의 입장을 옹호한 의원은 단 1명도 없었습니다. 미네소타출신의 「빌·프렌젤」의원(공화), 워싱턴주의「돈·봉커」의원(민주)등이 중공·대만·홍콩등 일부 아시아국가들의 어려운 처지를 소개하며 의원들의 동정을 구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한국의 대미외교나 로비가 어느 수준에 와있는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한국이 세계 8번째로 대미활동비용을 많이 쓰고 있는데 비해 이들 나라는 모두 10위권 밖에 속한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국내 업계나 국민들의 관심도 같은 입장에 있는 다른 아시아국가들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물론 필리핀·태국·대만·홍콩·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젱킨즈법안에 관련된 거의 모든 나라의 섬유업계 대표나 노조 등이 항의시위를 벌이고, 고위당국자들이 노골적인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작 가장 큰 피해당사자가 될 한국에서는 「강 건너 불 보듯」 너무 태연한 모습입니다.
-우리의 대미로비활동이나 전체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모두 새로와져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군사적 맹방관계가 경제적인 면까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종전의 안일한 사고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국이 젱킨즈법안등을 마련하면서 아시아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섬유류를 많이 팔고있는 캐나다나 유럽을 규제대상에서 빼놓는 등 눈에 띄게 형평의 원칙을 어긴 것을 보면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냉정한 국제사회의 일면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한국경제는 미국의 조치에 사활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온 국민이 로비이스트가 된 기분으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나서야 할 것입니다.
-한국로비가 형식적이어서 실속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반성해야 할겁니다. 미국에 있었을 때 눈여겨보면 한국의 고위관리나 업계대표들 가운데는 수도 워싱턴에 와서 미 고위관리와 만나는 자체에 신경을 쓰고 실속은 뒷전에 두는 사람도 적지 않았어요. 이에 비해 대만 로이비스트들은 각주정부나 카운티를 찾아다니고, 시골 구석구석을 쑤시면서 품목별로 로비활동을 펴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로비활동을 위한 활동방식에도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할겁니다.
미의원들은 외국인과의 친분도 좋지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자신의 선거구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논리야 어떻든 자신의 선거구내의 산업과 주민들의 일자리를 위해 뛰고 있지요. 워싱턴에서의 「막연한 로비」보다 지방구석구석을 1대1로 파고 드는 대만식 로비가 효과를 거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정부차원에서 대외창구가 도대체 어디냐 하는 문제에 외국에서 혼선(?)을 일으키고 있어 우리의 로비활동의 효과도 그만큼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지금 대외 공식창구는 해외협력위기획단으로 되어 있지요. 그러나 외무부·상공부도 경제외교·통상외교를 담당하고 있어 실제로 대외창구는 3원화 되어있습니다. 외국에서 보면 『진짜 어떤 견해가 한국정부의 입장이냐』고 물어온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 어느 관리의 이야기였습니다.
-한국의 대미로비는 사실 「사후약방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해 우리 컬러TV에 대한 덤핑제소사건이나 피아노·신발 등 미국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후에 바빠지는 것이 한국업계나 정부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경제단체나 정부·업계에서는 『돈이 있어야하지요』라고 돈타령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백60여명의 로비이스트를 동원, 연간1천9백만달러를 쓰는데 비해 한국은 지난해 47명의 로비이스트를 활용하면서 4백50만달러정도 썼다는 겁니다.
그만큼 뿌리는 씨의 양이 적다고나 할까요. 우선 무역협회는 수출·로비의 주역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연간 무역업계로부터 2백60억원을 무역특허자금으로 거둬들이는데 50%는 무공에 지원하고 나머지는 거의 전부 신축빌딩건설자금에 보탤 수밖에 없어 로비를 의한 자금의 여유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대한상양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올 예산 40억원 중 해외협력에 2억5천만원을 계산하고 있는데 접대비다, 사절단파견이다 해서 경비를 빼고 나면 여분이 없는 실정입니다.
무협이 워싱턴에 사무실을 낸 것도 지난해 봄이고 일본은 50여개 상사가 워싱턴에 진을 치고 있는데 비해 워싱턴주재 한국의 종합상사 사무실은 서너개 뿐이니 정보전쟁에서 일본에는 족탈불급이 아닐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돈타령문제에서 이런 저런 인물들을 초청하여 분에 넘게 대접해 보내는데 드는 비용을 더 알차게 쓸 수 없겠느냐 하는 문제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요즈음 같아서는 우리의 대미로비보다 미국측의 대한로비가 더 센 느낌입니다. 한국경제·관료출신 거물급들이 줄을 이어 왔다가는 이면에는 다 꿍꿍이속이 있다는 이야기고 그 중에는 미국회사들과 직접 관련되어있는 사람이 많다고 해요. 더구나 서울에 있는 국제거래관계 법률사무소들은 지난해부터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성업중이랍니다. 이들 법률사무소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굵직굵직한 회사들로부터 대한진출을 위한 로비도 업무의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다국적기업의 위력을 배경으로 활동이 눈에 훤히 띄일만큼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83년 봄 미국언론인 12명과 함께 한국인으로는 혼자서 미국 디트로이트에 있는 포드자동차본사를 방문, 브리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포드부사장이 브리핑을 하면서 첫 서두에 『일본뒤로 바로 한국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타이틀을 붙인 차트를 내보이면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급속도로 성장, 미국시장을 쳐들어오려고 넘보고 있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차 한대도 아직 팔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러한 경계의 대상이 된 것은 우리경제의 과잉PR등 우리한테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정부나 업계는 대만식으로 조용하게 그러면서 내실있는 수출전략을 짜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독 한국이 미국 보호무역주의 바탕의 타기트가 되는 이유중의 하나로 일본의 교활한 역로비·역선전이 큰 몫을 한다고 봅니다.
특히 일본의 수출업계와 정부는 합심해서 전자·자동차·컴퓨터·TVR 등 분야에서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시장에 한국이 끼어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음해공작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여러나라들도 일본무역흑자의 피해자들입니다. 고차원적인 로비전략을 펴야 할 것입니다.
재미는 일본이 보고 뒤 책임은 한국이 뒤집어쓰는 어리석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입니다.
-대미통상외교에 있어서 앞으로 좀더 신경을 써서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 대의회외교라고 생각됩니다.
보호무역주의 압력이 행정부보다도 의회를 휩쓸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지역구와 연결이 되어있어 선거구민과 산업체 이익을 외면할 수 없는 터에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 종전에 무역정책에 관해 「비둘기」였던 의원들까지 「매」로 바뀌고있는 실정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국회의 대미의회접촉활동이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국회도 수많은 의원외교사절단을 해외에 내보내왔습니다만 실효면으로 볼 때 알맹이가 별로 없지 않았느냐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국회로서도 뒤늦은 감은 있습니다만 대외통상문제에 대해 초당적인 통상외교를 벌여야겠다는데 대해 요새 논의를 활발히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회안에는 심지어 미하원에 세출소위가 있다든가, 상원에 외교문제소위가 있어 가지고 대외적인 문제를 자기네 국가이익차원에서 신축성있게 대응하고 있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최근 국회는 재무위·상공위 등의 간부들을 모아놓고 통상관계 전문가들로부터 미국정책수립과정·통상정책·법률절차 등을 브리핑받도록 한바 있습니다. 학습단계인 셈이죠.
-국회가 할 일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미의원들이 입만 열면 한국을 「제2의 일본」으로 호칭하고 있으나 국민소득이 2천달러에도 미달하고 경제규모가 일본의 15분의1수준 정도라는 사실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 동안 뻔질나게 미국을 드나드는 국회의원들이 허다 했는데 뭣들을 했는지 한심합니다.
대미의회외교를 강화하려면 먼저 바로 그런 점을 개선해야합니다. 현안별로 조직적인 준비를 갖추고 꼭 필요한 상대를 잘 선정해 효과있게 접촉을 벌여야합니다. 그러려면 의회 나름대로 전문가를 배양해야 합니다. 나눠먹기식으로 적당껏 돌려가면서 해외여행하는 수준의 의회외교는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이광요 싱가포르수상이 9일미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감동적인 연설」은 상당히 차원높은 대미공개 로비였습니다.
이수상의 연설문이 본지 10일자에 처음으로 보도되자 정부의 각 부처와 대기업체들이 앞을 다투어 본사에 원문입수를 요청, 「아시아의 지도자」로 부상한 이수상의 연설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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