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산도 대구도 “영남권 주민 속인 것…신공항 재추진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사 이미지

‘영남권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

서병수 “김해공항은 안전에 문제”
권영진 “신공항 백지화 검증할 것”
홍준표 “정치적 결정이지만 수용”
시민들 “지역갈등 상처 치유책을”

21일 오후 오후 3시 대구상공회의소 10층 대회의실. 대형 화면으로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결과가 발표되자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급격히 가라앉았다. 곧이어 강주열(55)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참담하다. 이건 이명박 정부에 이은 대국민 사기극이다”고 외쳤다.

이수산(53) 추진위 사무총장은 참석자 50여 명과 함께 구호를 외쳤다. “박근혜 정부의 신공항 대국민 사기극을 강력히 규탄한다. 우리는 남부권 신공항을 재추진할 것을 결의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의실을 빠져나가는 강 위원장은 눈물을 보였다.

기사 이미지

강주열 남부권 신공항 범시·도민추진위원회 위원장(사진 왼쪽)도 밀양 유치에 다시 나서겠다고 말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신공항 건설이 무산되자 영남권이 반발했다. 가덕도를 지지한 부산뿐 아니라 밀양을 내세운 대구·울산·경북·경남 등 4개 지자체 모두 불만을 쏟아냈다. 일부에선 “정부가 영남권을 농락했다”는 거친 반응도 내놨다. 가덕도와 밀양을 놓고 저울질하다 유치전이 과열되자 발을 뺀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밀양 낙점을 기대했던 대구 등 지자체는 예상 외의 결과에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해 1월 5개 시·도 합의에 따라 유치전을 펴지 않았던 데다 활주로 2개를 갖춘 제대로 된 공항은 밀양밖에 없다고 판단해 선정을 낙관해 왔다.

이수산 추진위 사무총장은 “정부가 영남권 주민을 기만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 정부마저 신공항 건설을 또다시 백지화시킨 것에 유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이번 용역 과정과 내용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계는 밀양 신공항이 영남권 항공 물류의 중심이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무산되자 실망하는 분위기다. 한상돌 대구시관광협회 회장은 “김해공항 주변이 도시화돼 확장하더라도 공항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원 김원식(55·대구시 남구)씨는 “결국 정부가 영남 지역의 갈등을 부추긴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우려가 현실이 돼 유감스럽다”며 “절박한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신공항 예정지였던 밀양시 하남읍 주민들의 의견은 갈렸다. 주민 신순자(60·여)씨는 “공항이 들어온다며 마음만 들뜨게 해놓고 이게 무슨 일이냐. 심란해서 농사일도 손에 안 잡힌다”고 말했다. 반면에 익명을 원한 한 40대 주민은 “공항이 들어오면 소음이 생기고 땅이 없는 임차농들은 생활 터전을 잃게 된다”며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경남과 울산의 반응은 정부 발표 수용론 쪽으로 기울었다. 울산시는 보도자료에서 “신공항이 원하는 방향으로 실현되지 못해 유감스럽다. 많이 아쉽지만 정부가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본다”고 사실상 수용 입장을 밝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김해공항 확장안은 정치적인 결정이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또다시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돼 영남권을 갈등으로 몰고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국토교통부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동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연구 최종보고회’를 열고 부산 김해공항 확장을 발표했다. 정부 발표 후 조성제 부산상의 회장(사진 가운데)은 가덕 신공항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송봉근 기자]

부산 쪽에서는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오후 3시쯤 부산상공회의소 2층 국제회의장. 신공항 입지 결과가 발표되자 김해공항 가덕 이전 시민추진단 소속 회원 30여 명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가덕 또는 밀양 중에서 한 곳이 발표될 것에 대비해 노란색 종이의 한쪽에는 ‘환영’을, 반대쪽에는 ‘규탄’이라고 적어 놓고 결과에 따라 종이를 흔들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① 경제성 따졌다, 결론은 김해공항 확장
② 김해공항 확장, MB 청와대서도 검토했다
③ 김해공항 인근 주민 “사람들 몰려 경제 살아날 것”



서병수 부산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불복 의사를 밝혔다. 서 시장은 “김해공항의 안전에 문제가 있어 신공항을 추진했는데 (정부가) 어떻게 김해공항 확장 방안을 내놓을 수 있나. 용역 취지에 명백히 어긋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가덕 공항 유치에 실패하면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공언해 온 서 시장은 거취를 묻는 질문에 “오늘 이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정부 용역 발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몰라 세밀히 분석한 후 거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말했다.

시민 김승찬(34)씨는 “결과적으로 영남 지역 갈등과 분란만 남았다.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지 정부와 관계 지자체에서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부산·밀양=홍권삼·황선윤·김윤호·강승우 기자 honggs@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