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광양항 육성계획에 뿔난 군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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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남 광양항을 동북아 자동차 환적(換積)의 중심기지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인접 항구인 전북 군산항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항구끼리 자동차 화물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논란이 격화되자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해수부, 자동차 환적 중심지 키우려
광양 외국 선박 운송제한 면제키로

해양수산부는 21일 “광양항에 대해 카보타지(cabotage) 규정을 3년간 적용하지 않기로 한 방침은 여전히 유효하며, 추가로 다른 항구에 대한 면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해수부가 발표한 ‘광양항 활성화 및 중장기 발전 방안’에 대한 군산항의 반발이 커지자 대책 마련에 착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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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은 ‘광양항을 국내 최대 산업클러스터 항만으로 육성하겠다’는 해수부의 발표에 대해 “특혜”라며 거세게 반발해왔다. 카보타지는 한 국가 안에서 여객·화물의 운송 권리를 외국 선박에 주지 않고 자국 선박이 독점하는 국제 관례다.

당시 해수부는 “광양항은 1986년 12월 문을 연 이후 여수석유화학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 등 배후 산업단지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 항만으로 성장했지만 최근 경제 여건 악화로 배후 산업단지의 성장이 둔화되고 항만 이용 실적도 정체된 상황”이라며 정책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 광양항 컨테이너부두에 있는 4개 선석(배를 댈 수 있는 접안 시설)은 이미 자동차 전용 부두로 활용되고 있거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환적된 자동차 200만 대 중 광양항에서 처리한 물량은 114만 대로 전체의 57%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평택항 30만 대, 군산항 30만 대, 기타항구 26만 대 등이다.

이에 군산 항만업계는 “광양항에 카보타지를 면제해주는 것은 특혜”라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정부 방침이 시행되면 군산항은 자동차 환적 물동량이 급감해 물류 기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군산항 전체 물동량 1849만t 가운데 자동차 환적 물량은 18.7%인 346만t에 달했다. 군산시는 자동차 환적 물량을 광양항에 모두 빼앗길 경우 연간 12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비 51억원을 들여 오는 10월 완공 예정인 5만㎡ 규모의 야적장도 걱정거리다.

광양항 측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수광양항만공사 기획조정실 은용주 과장은 “광양항을 국제적인 환적 기지로 육성하려면 카보타지 면제는 필수”라고 밝혔다. 또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정부 몫이기 때문에 정책 방향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다른 항구들에 대해서도 카보타지 면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해운정책과 이정로 사무관은 “광양항에 대한 육성정책은 그대로 추진할 예정”이라며 “다른 항만들의 상황 을 파악해 추가적으로 카보타지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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