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NICS<신흥공업국>(6)|본사 신성순특파원 간남아 3국 순회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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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후발도상국에 뒤쫓기고 앞서가는 선진국에 견제당하는 신흥공업국(NICS)의 고민은 홍콩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제조업의 주종을 이루는 의류 등 경공업제품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줄고 있고, 선진국 시장의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이같은 홍콩의 사정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메이드 인 홍콩」 제품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의류제품이 홍콩제품의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5년의 44.6%에서 84년에는 33.9%로 대폭 줄었고, 한때 섬유제품 수출감소의 공백을 메워주던 시계·카메라 수출도 80년의 10.4%에서 84년에는 7.5%로 비중이 떨어졌다.
시장구조면에서는 84년까지 홍콩산 상품수출의 63%를 차지하던 미국·영국·서독·일본 등 4개 선진국 시장의 비율이 85년에는 59%로 낮아졌다. 이들 각국의 경기침체나 홍콩의 환율정책에도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특혜관세대상품목축소(50개품목), 섬유류 신원산지 규정실시 등이 보여주듯 수입규제가 그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도 홍콩경제는 한국·대만·싱가포르 등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다른 어느 신흥공업국보다도 밝은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금년 상반기 수출실적만 해도 한국이 전년동기비 4.l%의 감소를 보였고 대만은 제자리 걸음, 싱가포르도 2.7% 증가에 그친데 대해 홍콩만은 13.7%나 늘었다.
부동산경기도 활기를 띠어 신규건물 착공면적이 84년의 1백92만8천평방m에서 금년에는 1∼5월 사이에 이미 1백27만8천평방m를 넘어섰다. 부동산 거래는 상반기에 11만건이 이루어져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가 늘었고 주택융자실적도 상반기 중 40.9%가 증가했다.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 호텔투숙률이 88%를 내리지 않고 있다.
이처럼 활발한 건축경기와 관광산업·수출증가 등을 반영, 실업률은 84년의 3.8%에서 금년 1·4분기에는 3.3%, 2·4분기에는 3%로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증권시장의 주가도 2.8%가 올랐다.
올해 GNP 성장률도 작년의 9.6%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해도 7%의 성장은 무난할 것으로 홍콩정청은 분석하고 있다.
금년에 제로(0)성장을 각오하고 있는 싱가포르나 온갖 정책수단을 다 동원해서 5∼6%의 성장을 이루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한국·대만에 비교한다면 밝은 전망이다.
작년까지만해도 중공과의 영토협정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던 홍콩경제가 미국경기의 후퇴, 보호무역주의의 확대 등 나쁜 여건 속에서도 이처럼 원기를 회복하게된 것은 영·중공간 영토협정의 체결로 장래에 대한 불안이 가신데다 중공에 대한 수출이 크게 늘어 선진국 시장의 상실을 어느 정도 메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홍콩은 작년 12월19일의 영·중공간 영토협정체결에 의해 1997년에 중공의 특별행정구역으로 편입된 후에도 최소한 50년간은 지금과 같은 자유경제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았다.
이에 따라 한때 홍콩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도피자금이 다시 되돌아오고 있으며, 부동산투자가 활기를 되찾아 신계지구에서는 빌딩·주택 등의 신축공사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또 개방정책추진에 따른 중공의 수입수요증가로 금년 상반기 중 홍콩의 대중공수출은 자체상품이 전년동기비 74% 늘어난 10억1천6백만달러, 제3국상품의 재수출이 1백40%나 증가한 31억6천3백만달러 합계 41억7천9백만달러에 달해 1백20%의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대중공수출의 급증은 홍콩의 수출구조에 주목할만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홍콩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공시장의 비중이 87년의 17.8%에서 금년 상반기에는 28.8%로 높아짐으로써 이제까지 최대의 수출시장이었던 미국시장과 맞먹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시장의 비율은 잇단 수입규제로 84년의 33.2%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29%로 떨어졌다. 이같은 추세라면 금년 중에 중공시장이 미국을 누르고 홍콩의 제일 큰 시장으로 부상할 것은 틀림없다.
또 한가지는 대중공수출이 주로 제3국상품의 재수출이라는 점에서 홍콩의 성격이 가공무역항에서 중계무역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중계무역항이었던 홍콩은 중공정권의 성립과 한국동란으로 대중공무역에 제약이 가해짐으로써 가공무역항으로 성격이 변질되었었다.
대중공무역이 흑자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큰 변화의 하나다.
홍콩의 대중공무역수지는 1952년이래 계속 적자를 보여왔다. 그것이 금년 상반기에 처음으로 8억8천3백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같은 일련의 변화가 홍콩의 장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지는 아직 단정해 얘기할 수 없으나 홍콩이 중공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처럼 NICS 4개국 중 가장 밝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홍콩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토반환 문제를 둘러싼 이른바 홍콩몸살로 세입이 줄어들어 81년까지 흑자를 보여온 재정수지가 83년에 35억홍콩달러의 적자를 보인 것을 비롯해 83년 29억홍콩달러, 84년 7억5천만달러 등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금년예산에서도 12억3천만달러의 적자를 계상하고 있다.
개정적자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홍콩정청은 자유무역항으로서의 명예도 팽개치고 금년 2월부터 화장품·청량음료에 대해 관세나 다름없는 20%의 물품세를 새로 매기기 시작했다.
중공이 선진국시장의 상실을 보충해주고 있다고 하지만 대중공수출의 76%는 제3국상품의 재수출이다.
홍콩에서 생산되는 섬유류·완구·전자제품 등 자국상품의 금년상반기 수출실적은 작년 동기에 비해 4%나 줄었다.
특히 자국상품수출의 33.9%를 차지하는 의류수출이 12%나 감소하고 전자제품 수출이 16%나 줄어든 것은 홍콩산업계에 큰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전반적인 실업률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섬유부문에서는 금년들어 1백44개 업체가 도산했으며 전자부문에서는 전체종사자 9만3천8백명의 4.9%에 해당하는 4천6백명이 84년 3월부터 금년 3월사이에 직장을 잃었다.
이같은 사태에 대해 홍콩정청무역국장보 「후트맨」씨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가져온 결과라고 공개하고 미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젱킨즈」법안이 결국 미국에 해독을 끼칠 것이라고 이의 철폐를 주장했다.
홍콩상공회의소의 「맥그리거」 상근부회장은 『GDP의 90%를 수출에 의존하는 홍콩에 선진국들의 보호주의는 치명적 타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하고 홍콩의 수출구조가 대중공 중계무역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도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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