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점수 볼모로 학생들 외출·외박 금지조치…인권위 "사생활 자유 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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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생활을 하는 대학에서 토익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의 외출과 외박을 제한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결정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해양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국립대의 기숙사 관장인 A교수는 지난해 9월 학생들에게 ‘2개월 내에 토익 성적 550점을 넘지 못하면 외출·외박을 금지한다’고 통보했다. 단기간 내에 학생들의 토익 성적을 올린다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학교 측의 의도와는 달리 학생들의 토익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10여명의 학생들은 실제 5주간 기숙사 외출과 외박을 금지 당했다.

학교 측의 외출·외박 금지 조치에 학생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토익 성적과 외출·외박이 무슨 상관이냐”, “학교 측의 지나친 인권침해”라는 주장이었다. 학생들의 반발에도 학교 측은 “해양전문인력의 특성상 다국적 선원이 늘어나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토익점수 650점을 넘지 못하면 졸업이 유예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맞받았다. 학생들의 원활한 학사일정 진행과 졸업을 위한 ‘충격요법’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외출·외박 금지라는 제약으로 토익 성적 550점 미만 학생이 52명에서 27명으로 줄었다”며 “상당한 교육적 효과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이 학교 학생인 B씨 등 2명은 ‘학교의 불합리한 조치로 사생활이 침해당했다’며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쳐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또한 학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인권위는 토익 성적을 기준으로 외출·외박을 금지한 통보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과 개인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교육적인 목적에서 학생들의 기본권을 제한할 경우 그 정도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권위는 “학교 측의 조치가 학칙이나 기숙사 운영규정을 따르지도 않았고, 구성원과의 협의 등 합리적인 절차가 생략됐다”며 A교수에게 ‘인권친화적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라’고 권고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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