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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공공기관 경영평가 33년, 여전한 부실·낙하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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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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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16일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대상 공공기관 수(116개)보다 더 많은 민간 전문가(161명)가 이번 평가에 참여했지만 결과를 두고 논란만 일었다. 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석유공사·국제방송교류재단·한국시설안전공단 4곳이 기관장 해임 권고 대상인 최하 ‘E(아주 미흡)’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책임진 기관장은 없었다. 평가 대상 기간(2015년)에 재임했던 사장은 이미 퇴임한 뒤였다.

평가의 적정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올해 낙제점을 받은 광물·석유공사의 5년 전 등급은 정반대였다. 이명박 정부가 자원외교의 기치를 날리던 시기 석유공사(2010년), 광물공사(2011년)는 ‘A(우수)’ 등급을 받았다. 그때 공격적으로 투자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현재 광물·석유공사는 구조조정 칼날 앞에 섰다.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에 대한 평가를 시작한 건 1974년이다. 출발은 단순한 재무제표 분석이었다. 당시 공공기관은 사소한 투자·업무도 정부의 승인 없이는 할 수 없었다. 고위직은 ‘낙하산 인사’가 싹쓸이했다. 성과 평가의 의미가 없었다.

9년 후인 83년 경제기획원(현 기재부)은 공공기관 평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현행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제도의 뿌리인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제도’다. 정부 지분이 50%가 넘는 24개 공공기관을 평가해 수·우·미·양·가 등급으로 나누고 결과에 따라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내세운 목표는 뚜렷했다. 책임·자율 경영이다. 공공기관장을 비롯한 임직원은 ▶기관 특성에 맞게 예산부터 투자까지 자율적으로 경영을 하고 ▶정부 간섭 없이 인재를 등용해 쓰되 ▶경영의 결과에 대해선 사후 엄중히 책임을 지게 한다는 게 골자였다.

30여 년이 지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의 현주소는 보이는 그대로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시책을 무비판적으로 실행하다 부실에 빠지고 낙하산 인사에 조직이 멍들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의 현실은 70~80년대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평가제도를 개선하겠다며 정부는 수시로 기준을 바꿨지만 현장의 혼선만 키웠다. 정부 중점 정책을 충실히 따르는 기관에 후한 점수가 돌아간다는 원칙만 변함이 없다. 자율과 책임이란 제도의 원래 취지는 희미해진 지 오래다. 공공기관을 평가하기 이전에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제도를 처음 도입했을 때의 ‘초심’을 기억했으면 한다.

 조현숙 경제부문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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