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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부터 발끝까지 흰색…레이스 드레스 눈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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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둔치서 ‘순백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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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린 프랑스 문화 행사 `디네 앙 블랑`. 흰색으로 차려입은 참가자들이 만찬을 즐기고 있다.

“혹시 무슨 종교 행사인가요?”
지난 11일 흰색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울 반포한강공원으로 향하자 이를 지켜보던 행인들이 웅성거렸다. 가까운 지하철역 등 4곳에서 집결한 이들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먹을거리를 담은 피크닉 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수 백m를 걸어서 이동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테이블과 바구니까지도) 흰 색으로 치장한 이들이 약 1000여 명이었다. 거대한 순백의 물결은 토요일 저녁 한강둔치에 이색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화이트 드레스 코드’를 준수하며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프랑스 문화 행사 ‘디네 앙 블랑’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한 행사로 디네 앙 블랑 코리아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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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러플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방송인 김성경, 흰색 수트에 스니커즈를 매치한 홍석천(사진 왼쪽부터), 슬림한 화이트 원피스를 선보인 모델 여연희.

화이트 드레스 코드의 만찬

‘디네 앙 블랑’은 불어로 ‘순백의 만찬’이라는 뜻이다. 1988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 규모의 야외 디너파티다. 파리 에펠탑, 뉴욕 월스트리트,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적인 랜드마크에 이어 서울의 상징인 한강변에서도 열리게 됐다.

이 만찬은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든 참가자는 ‘화이트 드레스 코드’를 지켜야 한다. 드레스 코드는 때와 장소, 행사 등에서 마땅히 입어야 할 복장 규정을 말한다. 개최 장소를 행사 직전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도 특징. 비밀에 감춰졌던 행사 장소는 행사 시작 몇 시간 전 참가자들에게 문자로 발송되면서 공개됐다.

음식은 물론 테이블, 집기류 등 파티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직접 준비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같은 ‘BYO(Bring Your Own)’ 방식의 파티가 드물다. 디네 앙 블랑은 프랑스인 프랑수아 파스키에가 친구들과 열었던 파티에서 시작됐다.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미식과 엔터테인먼트, 패션을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국제적인 복합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지금까지 세계 25개국 60개 도시에서 약 10만 여명이 참여했다.

손수 만들어온 음식으로 차린 식탁

이날 오후 6시 세빛섬 앞 반포한강공원 행사장은 흰 옷을 차려입은 이들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집에서 가져오거나 대여한 흰색 테이블과 의자로 자리를 만들고, 손수 마련한 음식을 아름답게 세팅하느라 분주했다. 백합과 장미 등 테이블 위 꽃장식은 물론 접시·냅킨까지 모두 흰색이었고, 와인도 화이트 와인 일색이었다. 스테파노 디살보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호텔 총주방장도 직접 구운 포카치아 빵과 이탈리안 가지 절임 등을 준비해왔다. 그는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누는 대규모 파티가 서울에서 열리는 게 이색적이어서 참여하게 됐다”며 “화이트 드레스 코드가 거의 완벽하게 지켜져 파티에 재미를 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흰 셔츠와 바지, 흰 운동화를 신은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는 “음식과 패션이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모습이 흥미로웠다. 프랑스 문화를 공유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행사는 디네 앙 블랑의 상징인 ‘냅킨 웨이브’로 시작됐다. 재즈 앙상블 ‘최경식 쿼텟’, 레트로 음악으로 활동하는 ‘바버렛츠’, 프렌치 DJ 얀 카바예의 디제잉 퍼포먼스로 이어졌다.

올 여름 화이트 트렌드는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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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팬츠 수트로 멋을 낸 패션 블로거 유진 씨 부부. 멋스러운 헤어 스타일과 선글라스로 포인트를 줬다.

눈에 띈 대표적인 화이트 룩은 레이스 소재 활용이었다. 여성스러운 레이스 드레스나 스커트는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올 봄·여름(SS) 컬렉션에서 선보인 스타일이다. 복고풍 패션 트렌드와 맞물려 올 여름 여성 패션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파티 플래너 이소라 씨는 흰색 레이스 미니 드레스를 입고 머리 장식을 달았다. 패션 모델 지이수 씨도 미디 길이의 레이스 드레스에 금색 샌들을 매치했다. 방송인 박소현 씨는 종아리 길이의 레이스 스커트에 양쪽 어깨를 드러내는 오프 숄더 레이스 상의를 매치해 원피스처럼 연출했다.

흰색은 여성스러움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방송인 김성경 씨는 부드러운 러플이 여러겹 들어간 흰색 드레스를 입었다. 그는 “밝고 캐주얼한 느낌이 주말 저녁 야외 만찬에 어울릴 것 같아 몇 년전에 산 흰색 원피스를 꺼냈다”며 “평소 바지 정장 차림을 주로 하지만 여름 저녁에는 편안하면서 여성스러운 느낌의 옷차림을 즐긴다”고 말했다.

흰색은 팬츠도 여성스럽게 꾸며주는 힘이 있다. 패션 블로거 유진 씨는 통 넓은 와이드 팬츠 수트에 물결 모양 웨이브를 넣은 묶음 머리를 했다. 패션 디자이너 전새미 씨는 아이보리빛이 감도는 흰색 점퍼 수트를 화사하게 연출했다.

흰색을 예쁘게 소화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유진 씨는 “뚱뚱해 보일까봐 ‘올 화이트’를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데, 단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을 맞추면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와이드 팬츠는 하체가 튼튼한 여성들에게 제격이다.

흰색으로 통일하면 심심하고 밋밋해 보일 수 있다. 이럴 땐 헤어 스타일이나 소품을 강조하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 헤어핀이나 모자, 포인트 헤어 스타일이나 메이크업이 단조로움을 보완해준다. 흰색 망사 베일로 얼굴을 살짝 가리거나 깃털 장식을 얹은 모자를 쓴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흰 옷은 관리가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한다. 초보자라면 패스트패션 브랜드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원피스나 반바지, 셔츠를 믹스 앤 매치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좋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oh.jongtaek@joongang.co.kr, 디네 앙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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