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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전관 비리를 '변호사 처신 탓'으로 돌린 대법원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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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법원이 전관(前官)예우 논란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연고관계에 따라 변호사를 선임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법정 밖에서의 변론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과연 이런 대책으로 전관 비리 의혹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제 대법원은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가 재판부와의 연고관계를 내세워 수임료 1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데 대해 사법부 차원의 대책을 밝혔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은 대법원에서 하루라도 함께 근무한 대법관에겐 배당하지 않고 ▶법정 밖 변론과 전화 변론, 몰래 변론 등 부적절한 의견 전달 금지를 대법원 규칙으로 명문화하기로 했다. 가칭 ‘부당변론신고센터’도 개설하겠다고 했다. 요약하면 법원 외부의 불순한 접근을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이번 대책은 대법원의 안이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대법원은 “사태의 근본 원인은 법관과의 연고관계를 사건 수임의 도구로 악용해온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법부 역시 이러한 행태가 가능하도록 틈을 보인 측면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전관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일부 변호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라 재판의 불투명성과 폐쇄성에 있다.

법정에 제출된 증거와 진술을 토대로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고 법리적 문제가 정리된다면 의뢰인들이 굳이 판사 출신 변호사의 인적 네트워크를 돈으로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다 보니 ‘전관’ ‘연고’를 앞세운 변호사와 브로커들의 영업 마케팅에 말려드는 것 아닌가. 책임을 내부(재판)가 아닌 외부(변호사 처신)로 돌리는 이번 대책은 법원이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진 집단사고에 갇혀 있는지 말해주는 것이다.

그간 법조 비리가 터질 때마다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대책의 틈새를 비집고 새로운 유형의 비리들이 고개를 들곤 했다. 대법원이 재판에 대한 근본적 반성 없이 미봉책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사법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