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대신 '우리 모두'…루게릭병 딛고 국가(國歌) 바꾼 캐나다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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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에 걸려 발성이 곤란해진 벨랑제 의원이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적어서 보여주고 있다.

루게릭병에 걸린 한 캐나다 의원의 수 년에 걸친 노력이 마침내 캐나다의 국가를 바꿨다. 캐나다 하원이 15일(현지시간) 캐나다 국가인 '오 캐나다(O Canada)' 가사가 성 중립적 표현으로 개사, 변경됐다고 발표했다.

캐나다 자유당 모릴 벨랑제 의원(61)이 남성적 표현의 가사를 성 중립적으로 바꿔 발의한 국가 개사 법안이 찬성 225대 반대 74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의결됐다. 법안은 현행 국가의 두 번 째 소절 중 '그대 아들(son)들의 애국심'이라는 대목을 '우리 모두(all of us)의 애국심'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았다. 의원들은 국가 개사가 확정되자 의석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즉석에서 새 국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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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사가 통과되자 가장 큰 공헌을 한 벨랑제 의원에게 박수를 보내는 캐나다 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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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사가 통과되자 가장 큰 공헌을 한 벨랑제 의원에게 박수를 보내는 캐나다 의원들.

이 법안을 발의한 벨랑제 의원은 지난해 11월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이 사실을 공개했다. 루게릭병은 근육이 마비돼 결국 사망에 이르는 병이다.

벨랑제 의원은 지난해 10월 총선 종반 무렵 유세가 곤란할 정도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등 발성에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당선돼 7선 의원이 됐다. 총선 한 달 뒤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캐나다 현지 언론들은 "그의 증세는 올해 들어 급격히 악화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수년 전부터 국가 개사를 해야 한다는 법안을 소신을 가지고 추진해 왔다. 지난 1월에도 그는 개사 관련 법안을 다시금 발의했지만 이때부터 벌써 발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세가 깊었다.

유력한 새 하원의장으로 거론됐던 그는 병 때문에 의장직에 오르지 못했다. 그를 위해 하원은 지난 3월 명예의장직에 위촉했으며 임시 의사봉을 잡고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수년간 염원했던 이날도 벨랑제 의원은 휠체어에 앉은 채 의석을 지키며 표결에 참여했다.
그는 표결이 부쳐지기 하루 전, 국가 가사를 바꿔야 하는 이유와 관련해 "지금은 2016년이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발언은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내각장관의 남녀 비율을 거의 비슷하게 하면서 "지금이 2015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온타리오 출신인 그는 오타와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지냈으며 교통부 등에서 일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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