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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만날 수 있을까..." 설레는 가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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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두고온 산하와 피붙이를 찾아 남과 북에서 분단의 장벽을 넘은50명의 고힝방문단과 예술공연단.
오가는 사람들의 이산과 재회, 공연단의 얘기들을 모았다.

<부모산소 찾고싶어>
○…『꼭 35년8개윌만입니다. 두 누님·형님·여동생을 만나러갑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산소도 죽기전에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는데 』
지학정주교(65·천주교원주교구장)는 평양과 이웃한 평남 중화군 중화면 청학리고향에 두누님과 형·누이동생을 두고 왔다.
헤어질 때는 모두 30세전후 청춘이었던 형제가 이제 모두 백발늙은이가 돼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고 가슴이 멥니다』
지주교가 고향방문단 참가를 신청한 것은 5월 제8차 남북적회담서 방문단 교환합의가 발표된다음날.
나이가 많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맨먼저 다녀오고 싶어 이번에 방문단에 끼게됐다는 지주교는 누님과 여동생에게는 원피스 스웨터·블라우스·니트웨어 상하의·스타킹 손수건, 형님에게는 속내의·양말 T셔츠등 옷가지 10여점의 선물을 4년전 회갑때 동생부부·조카들과 찍은 가족사진과 함께 가방에 넣었다고 했다.
중화군,30마지기 농사를 짓는 중농가정의 6남매중 여섯째, 아들로는 둘째로 태어난 지주교가 형제들과 헤어져 고향을 떠나야 했던 것은 신앙의 자유를찾아서였다.
고향마을 성당신부의 영향으로 신부가 되기 위해 서울동성학교 신부과정에 입교했던 지주교는 원산 덕원신학교 5학년때 해방을 맞았고 공산정권이 들어서며 신학교가 폐쇄되자 50년1윌 단신월남했다.
현재의 가톨릭대학인 성신대학에 편입해 다니다 6·25가 나자 부산서 학도병에 지원, 1년반동안 종군했다.
50년 가을 북진길에 잠깐 고향에 들른것이 북의 가족과의 마지막 상면.
강원도 횡성전투서 다리를 다친 지주교는 제3육군병원에 입원했을때 뜻밖에 뒤따라 윌남한 막내동생 학삼씨를 만난다. 동생학삼씨는 l.4후퇴때 혼자서 월남, 목포친구집에서 지내다가 지원입대, 강원도 인제전투에서 다리에 관통상을 입은것.
『병실밖으로 나가보니 목발을 짚은 동생이 서 있더군요. 둘다 목발을 집어던지고 얼싸안았지요. 눈물밖에 나오는 것이 없었읍니다』
남쪽의 유일한 혈육인 동생 학삼씨도 현재 건축관계일을 하면서 부인 김인숙씨(51) 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있다.
지주교는 동생이 『고향의 흙을 한줌 담아 오라는 당부를 했다』면서 북한의 종교실태도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실향민대표로 착잡>
○…『어렴풋해진 기억속의 고향땅을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다볼수 있게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전가족이 월남할 당시 출가하여 홀로 남겨진 누님의 생사가 가장 궁금합니다』
46년12월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홍문리228 고향집을 떠나 남하한 그길을 되밟는 한국식품공업협회장 홍성철씨(59 전내무·보사장관, 서울 내곡동228) .
부모·2남3녀등 7식구중 누님이 북에 있다.
『제8차 회담이후 실무회담등에서 방문지 평양으로 국한되어 크게 실망했는데 뜻밖에 방문단일원에 끼어 황해도민회장으로서 황해도 실향민 1백36만5천명을 대표하게되어 착잡합니다』
방문소식을 듣고 황해도실향민으로부터 걸려온 「친지의 생사를 확인해달라」는 등의 전화를 받고 개인차원을 떠나 평화통일을 이룩하는데 기여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
홍씨는 지난 l5일 두여동생등 친지 30여명을 자기집에 불러 고향이야기를 나누고 선물 꾸러미를 꾸렸다. 홍씨는 시계 스웨터 스카프 양산 목도리등을 준비했고 두 여동생은 속내의 화장품세트등을 마련했다. 가족사진도 잊지않았다.

<성경등 10여점준비>
○…고당 조만식선생기념사업회상임위원장 박재창씨(71·서울 정능동559의69)는 『이북출신 친구들이 대신 고향산천을 실컷 보고와 얘기해 달라고 입을 모아 부탁해 책임이 무겁다』 고 했다.
박씨는 조만식선생밑에서 조선민주당일을 보다 고당이 연금당하는 것을 보고 47년 월남했다.
준비한 선물은 화장품 혁대·면도기 볼펜등 10여점과 성경찬송가책 등이다.
평양시설암리 고향집과 늘 다니던 평양 창동교회, 모교인 숭인상고, 어릴 때 꿈을 키우던 대동강변을 꼭 찾아보고 오겠다고 했다.

<평화사절의 각오로>
○…39년만에 고향에 가게된 강명순 한양대부총장(64)은 가족들에게 전해줄 선물로 루지·콤팩트·볼펜 스타킹 각3점과 옷감 2벌등을 준비해 놓고 19일밤을 기도를 하면서 뜬눈으로 새웠다.
강씨는 아버지가 50년 80세로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1.4후퇴시 피난민으로부터 전해들었으나 어머니(99)가 혹시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으며 평양신리 고향집이 가장 그립다고 했다.
또 냉면·만두국과 모란봉밑의 숯불불고기등 고향맛도 잊을수없다며 『평화사절로 간다는 생각으로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눈에선한 모란봉>
○…6 25동란중 피난민으로 월남한 명휘원(총재 이방자여사)원장 강성숙수녀 (54 광명시 철산동457의1)는 가족2명의 한복감 한벌씩과 시계 머플러·양말 속내의 등을 선물로 마련했다.
독실한 가톨릭집안이었던 강수녀는 종교때문에 박해를 받던중 자신에게 여자인민군 입영통지서가 날아든 50년12월 국군과 함께 월남했던 것.
처녀때 오르내리던 모란봉이 가장 보고 싶은 곳이고 고향의 녹두부침 냉면이 가장 먹고 싶다고 했다.
강수녀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밟는다는 감격에 19일밤을 기도로 지새웠다.

<「두만강」 부르겠다>
○…고향이 함남 장율호인 배우 김희갑씨(62)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벅차다. 평양에서 「타향살이」를 부를예정인데 그만 울어버릴것같다』고 말하고 『북쪽땅에 가도 정작 내고향에 가볼수없다니 안타깝다. 북쪽사람들도 혈육간에 끊을수없는 정이 있다면 내노래에 감동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역시 고향이 함남 원산인 가수 김정구씨(69)도 『옛날 20대청년으로 북족에서 「두만강」을 불렀는데 이제 다시 이렇게 늙어 그곳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게되니 감개무량하다』며 『한평생그리운 고향을 그리며 불러온 그노래를 이번에야 말로 진짜 온몸으로 힘껏 불러보겠다』고 말했다.
금씨는 『북한사람들도 지난 40여년동안 잘 들어보지못한 진짜옛날노래를 듣고 깊은 감회에 빠져들것이다』고 내다봤다.
코미디언 남보원씨(50 본명 김덕용)는 『어제밤엔 소주를 마시고서야 눈을 붙였지만 잠을 설쳤다. 나도 고향이 평양 순천군 선산면 금창리인 실향민이다』고 밝히고 『북에 남아있는 누님을 단한번이라도 만나볼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 꿈이 이뤄질 것 같지않아 답답하다』 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성대묘사실력을 마음껏 발휘해 북쪽 관객을 즐겁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가수 하춘화양(28)은 『62·5를 겪지못한 세대로 북한동포를 처음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설렌다』고 말하고 『그쪽에서 우리 대중가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는지 궁금하지만 「찔레꽃」과 「삼다도소식」(나훈아와 듀엣)등을 풍부한 감정에 담아 불러 그들의 가슴에 무엇인가를 울려지게 하고싶다』고 말했다.
한편 성악가 이규도씨(45)는 『이번 공연에선 단순히 세련된 면보다 그들에게 감동을 불어넣을수있는 공연을 하고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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