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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 일본군 ‘위안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야 한다”
#1
한 할머니가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울분에 찬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뉴스를 보고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나라를 잃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니 가슴이 떨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2
“내 나이 열여섯. 일본인이 억지로 옷을 벗기고 위로 올라오자
나는 그 아픔에 옷이 벗겨진 것도 잊은 채 벌떡 일어섰지요
그러자 주먹으로 내리치는 바람에 얼마나 울었던지”
#3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1924-1997)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4
이전까지 피해 할머니들은 증언을 꺼려왔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수치심과 괴로움 때문이었죠
사진설명: 1944년 9월, 미군에 의해 구출된 조선인 위안부
#5
세상의 시선도 곱지 않았습니다
“ ‘할매들이 돈 받으려고 나오나’, ‘그게 자랑이냐’라는 소리를 들을 때 발등을 찍으며 후회도 했다”
- 이용수 할머니
#6
가족들조차 달가워하지 않았죠
“언니에게 의논하니 '조카들도 있으니 제발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말라'고 했어요.
신고 후 가족들이 내게 발을 끊었죠” - 김복동 할머니
사진설명: 2013년 7월 30일, 해외 첫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7
하지만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로 다른 피해 할머니들도 가슴에 묻어뒀던 상처를 꺼냈고
“군인 방에 안 들어가겠다고 하니 관리자가 전기 고문을 해요.
내가 ‘엄마’하고 어찌나 세게 불렀는지 그 소리가 귀를 막아도 지금까지 나요.”
- 이용수 할머니
사진설명: 위안소 입구에 줄서서 기다리는 군인들
#8
‘위안부’ 문제는 공론화되기 시작합니다
“남사스럽지만 정신대* 문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섰다 역사적으로 한국민족이 당한 이 수치를 갚아야 한다” - 문옥주 할머니
(*당시에는 정신대라 불렀으나, 여기엔 노동력만 착취 당하는 사례도 포함돼 현재는 ‘위안부’와 분리 사용)
사진설명: 버마전선 포로수용소의 위안부들
#9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 이후 25년만인 2016년,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 란 이름으로 한데 모였습니다
(*피해자 증언 기록, 위안부 운영 사실 증명 자료, 피해자 조사자료, 치료기록 등 총 2744건)
#10
“용기 내 과거 사실을 알린 것은 정의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한국, 중국, 일본, 네덜란드 등 9개국 시민단체들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한 것입니다
사진설명: 일본에서 '위안부' 보상법정투쟁 나선 김학순 할머니
#11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
일본 내 우익 단체들은 이에 맞서
위안부의 강제성을 부정하는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진설명: 2006년 7월 5일, 눈물 훔치는 김순옥 할머니
#12
한 할머니의 용기로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죄로 꽃다운 시절을
고통스럽게 보냈던 소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진설명: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소[제공=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관장]
#13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 김학순 할머니
할머니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묻혔을 진실,
이제 우리가 이 뼈아픈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사진설명: 2016년 1월 6일, 김학순 할머니 석고상 어루만지는 이용수 할머니
(일단 이 사진으로 해두었는데 마지막 사진은 무엇이 좋을까요?ㅜㅜ!!!)
취재.구성 이근아/ 디자인 박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