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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곡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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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워질 「88올림픽문」은 파격적인 모양을 하고있다. 어떻게 보면 날개를 편 것도 같고, 또 달리 보면 대웅전의 지붕이 공중에 떠있는 것도 같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중업씨는 우리나라사찰입구의 일주문과 우리 고유건축의 지붕선울 본떴다고 말한다. 과연 날개부분의 곡선은 한옥의 추녀를 보는것 같다.
우리 고유건축의 지붕선이라면 일본의 미술평론가 유종열(1960년 작고)의 글이 생각난다.
그는 서울을 찾아가 남산에 올라가서 그 시가를 한번 내려다 보라고 했다. 1922년에 쓴 글이니 그 무렵의 고도를 상상해야 할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 가옥의 지붕에 보이는 끝없는 곡선의 물결이 아닌가. ……곡선의 물결은 움직이는 마음의 표시다.』
그는 한국 건축의 특색을 『피안의 바닷가를 치는 은은한 파도소리』에 비유했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와 비교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중국의 예술이 지상을 디디고 선 것이라면 일본의 예술은 지상을 즐기는 쪽이고, 한국의 예술은 지상을 떠나려 하고있다는 것이다.
정말 우리 한옥의 추녀는 하늘로 비상하는 곡선을 갖고 있다. 그것은 타일란드 사원에서 보는 곡선과도 다르다. 그쪽 사원의 추녀는 하늘로 숨가쁘게 치솟고 있다. 우리의 곡선은 유유자적, 은근한 여유와 멋이 있다.
어디 추녀의 곡선 뿐인가. 도자기며, 지붕을 덮는 막새기와며, 저고리의 소매, 버선의 코끝 하며, 모두가 비슷한 곡선으로 이어진다. 오죽하면 유종열은 『조선민족처럼 곡선을 사랑한 민족은 그들 외에는 없지 않은가』 라고 했겠는가.
그대신 우리나라 전통건축은 규모가 웅장하지 않다. 거창하고 장중한 아름다움이 덜하다. 다만 아담하고 친근감을 줄 뿐이다.
그러나 신라 융성기엔 황룡사를 짓는데 90년이 걸릴만큼 스케일이 컸다. 경복궁의 근정전이나 경회루, 화엄사의 각황전은 장대한 인상을 준다. 그 시대의 기운이나 성쇠와도 관련이 있는것 같다.
「88올림픽문」은 우리의 고유한 지붕선을 상징하면서도 그 스케일이 크다. 좌우폭이 70m요, 높이가 24m다. 올림픽은 우리 민족이 모처럼 비상하는 행사다. 그 점에서 「88올림픽문」은 5천년을 이어온 기상을 새긴 심벌이 될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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