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34만달러 예금에 이자 17달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은행에서 이자를 이것밖에 주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된다."

홍콩의 60대 노숙자가 저금리 시대에 항의해 고액권 지폐를 불태우는 소동을 빚었다.

홍콩의 모 은행에 6개월간 34만7천홍콩달러(약 5천2백만원)를 예금했던 천보위(陳伯宇.64) 노인은 지난 14일 은행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자가 17.25홍콩달러(2천5백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홍콩 은행들은 요즘 1백만홍콩달러 이하의 보통예금에 대해 연 0.01%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화가 솟구친 陳노인은 예금을 모두 찾았다. 1천홍콩달러짜리 고액권 뭉치를 움켜쥔 그는 지폐를 한 장씩 꺼내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20여장을 태우며 "나를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고 소리쳤다. 홍콩에서 지폐를 태우는 행위는 '공공기물 파손죄'에 해당돼 최고 10년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陳노인은 10대에 폭력조직에 들어가 마약에 손을 댔다가 20여년간 감옥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마흔살을 넘어 마약을 끊었으나 가세가 기울어 노숙자로 전락했다.

그 뒤 20여년간 폐지(廢紙)와 재활용품을 수집해 생계를 연명했다. 하루 20홍콩달러로 세끼 식사를 떼우는 근검 절약으로 돈을 모았다는 것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