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서 동남아장비 철수신청 「중기입국」시비 재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해외건설 중장비에 대한「입국비자」는 나올것인가 아니면 안나올것인가.
해외건설 중장비의 「입국」시비는 해외건설의 「끝물」을 맞으면서 표면화된 것으로 지난해12월 ▲해외건설 철수업체가 쓰던 장비에 한해 국내반입을 허용하며 ▲관세는 제대로다 물되 5년동안 나누어 낸다는 선에서 일단 매듭이 지어졌었다.
그러나 최근 철수업체가 아닌 현대건설이 동남아현장에서 임무를 끝낸 5백여대의 중장비를 들여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국에 신청, 중장비반입여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그간 해외건설 중장비의「입국비자」는 모두 세번 발급됐을 뿐이다.
80년11월, 82년12월, 83년10월등 세 차례에 걸쳐 현대건설이 모두 5백17대의 중장비를 들여온것이 전부다.
이들은 모두 당시까지는 유일한 반입허용 대상이었던「간척농지개발용 중장비」들.
농수산부장관이「간척농지개발용」임을, 그리고 건설부장관이「해외건설현장의 중고품」임을 확인한 후 상공부장관이 국내반입을 허가했던 경우다.
이때까지만 해도 중장비 국내반입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실해외건설업체들의 철수가 현실문제로 등장하면서 중장비의 대규모 국내반입은 업계의 이해가 크게 엇갈려 서로들 목소리가 커졌다.
빈사상태의 해외건설에 도움을 주려면 해외건설업계의 건의대로 국내반입의 길을 터주어야 된다는 것은 건설업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반입을 허용하는 경우 그렇지않아도 가동률이 50%수준에 불과한 대우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국내중기메이커들과 1만5천여 영세 중기대여업자들이 적잖은 타격을 받기때문에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것은 중기생산·대여업계의 반론이다.
업계간의 이해가 얽혀 고심하던 정부는 결국 지난해12월 ▲해외건설철수업체가 사용하던 장비중 ▲83년 12월31일 이전에 구입한 것임을 건설부장관이 확인한 것만 반입을 허용하되 ▲일단 국내에 들여온후 다른 업체에 넘길수 없으며 ▲관세는 5년동안 나누어내도록 한다는 선에서 일단 교통정리를 끝냈다.
현재 해외건설현장에 나가있는 중장비는 모두 2만1천9백대. 건설부는 이중 약4천5백대 정도가 철수업체들에 의해 「반입희망」딱지가 붙은것으로 보고있다.
한편 삼성·대우 두 중기메이커의 연간 생산능력은 약 8천대이며 최근의 중기국내수요는 연간 약 4천대로서 이들 양사의 가동률은 50%수준에 머물고 있다.
또 최근 국내 중기보유댓수는 약 4만3백대로 이중 2만4천여대가 임대용 중장비인데 이들의 가동률도 약50%선에 지나지 않는다는것.
이같은 상황에서 비록 중기반입의 길이 열린 철수업체들이라 하더라도 막대한 운임과 관세를 물고 국내에 중기들을 들여와봤자 다른업체에 팔아넘기지도 못한채 일감이 없어 그저 세워두기가 십상이니 선뜻 국내 반입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건설부에 접수된 중장비 반입신청은 롯데건설·태평양건설·삼익건설 등 3개업체 모두 2백10대에 지나지않으며 이것마저 그저「신청」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고한다.
이래서 잠시 조용해지는가 했던 중기반입시비가 이번 현대건설의 동남아장비 반입신청으로 재연되고 있는것이다.
언뜻 보면「철수업체」도 아닌 현대건설이 왜 나서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하는 이야기도 있을수 있지만 현대측의 사정과 논리도 나름대로의 일리가 있다.
현대가 이번에 들여오려하는 장비는 30t짜리 불도저, 2루베짜리 굴착기 등 같은 기종이라도 국내에선 생산되지 않고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는 대형중기들이다.
만일 이번 현대의 신청이 허용된다면 이것은 사실상 모든 해외건설업체들의 중장비반입을 허용케하는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때보다도 심한 국내업계의 반발이 우려돼 당국도 처리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것이다.
현대가 문제의 중기들을 들여올수있는 단하나의 길은 농수산부장관으로부터 해당장비가 「간척농지개발용」임을 확인받는 것인데 현상태로선 이것도 불가능하다.
지난해 농수산부는 고위층의 재가를 받아 앞으로 간척농지개발은 절대로 민간기업에 맡기지않는다는 방침을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대의 신청을 받은 상공부는 최근 건설부에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해외건설의 어려운 입장을 대변해야할 건설부는 「가능하면 반입을 허용하자」는 요지의 답신을 보낸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황금의 알을 낳는 거위처럼 비춰졌던 해외건설은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문제를 야기, 정부당국자들에게 고심거리가 되고 있다. <김수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