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방국 언급하며 한국만 쏙 뺀 카터 미 국방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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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애슈턴 카터(사진) 미국 국방장관은 한민구 장관을 ‘동지(colleague)’라고 불렀다. 한·미 동맹에 대해선 ‘핵심(linchpin)’이라는 표현을 썼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아시아안보회의서 이례적 연설
미국은 의도적인 것 아니라지만
“한국에 사드 불만 표출”시각도

그러나 회담 직전 35개국 대표들에게 한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본회의 연설에선 우방들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제외해 뒷말이 나오고 있다. 카터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원칙에 입각한 안보네트워크(principled security network)’라는 새로운 이론을 들고 나왔다.

이 표현을 38차례나 사용하면서 27개 국가 간 양자 또는 다자 네트워크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일 관계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어느 때보다 견고하다”고 말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함께하고 있는 호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필리핀·인도·베트남·싱가포르 등과의 관계도 언급하며 파트너십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은 거론되지 않았다. 미국이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호주와 함께 한국을 대표적인 동맹으로 꼽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 당국자는 “미측에 확인해 보니 의도적으로 뺀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었다.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고도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둘러싼 한·미 간 미묘한 신경전이 카터 장관의 발언에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드 배치와 관련, 중국을 의식하는 한국에 대한 우회적인 불만의 표출이라는 얘기다.

카터 장관은 앞선 지난 2일 자신의 전용기에서 “한민구 장관을 만나 사드와 관련해 논의할 수 있다”며 사드 문제를 선제적으로 꺼냈다. 하지만 우리 국방부는 이를 전면 부인했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카터 장관의 연설문은 미국의 의도를 담아 사전에 치밀하게 작성된다”며 “한·미 동맹 자체를 경시한다는 게 아니라 (한국을) 압박하는 제스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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