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공무원 영면…유족, 대학생 용서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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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10시30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영락공원 화장장. 지난달 31일 밤 귀갓길에 아파트 20층에서 투신한 대학생과 부딪히는 사고로 숨진 전남 곡성군청 공무원 양대진(39·7급) 주무관의 유족들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유족에게 다가간 뒤 조의를 표한 기자는 오전 11시로 예정된 화장에 앞서 잠시 심경을 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 양 주무관 부인(34)의 작은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한 서모(53)씨는 화장장 한켠으로 이동해 유족의 심경을 들려줬다.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대학생 가족의 사과는 있었나.
"빈소가 마련된 첫 날인 지난 1일 장례식장에 찾아 왔었다. 대학생의 아버지와 형이 사과를 했지만 우리 가족도, 아들을 잃은 그 가족도 모두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대학생과 그 가족을 원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생도 어찌보면 이 사회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서하기로 했다."
어떤 점에서 사회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나.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안다. 말하자면 경쟁 사회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 가족들도 굉장히 힘든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아침에 아들을 잃은 가족의 심정이 어떻겠나."
유족은 대학생을 용서하나.
"용서한다. 장례절차를 모두 마무리한 뒤인 오늘 오후 대학생의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서로를 위로하며 마무리 짓고 싶다."
양 주무관의 부인 생각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심적으로 무척 힘든 상태지만 우리 가족은 용서하기로 했다. 양 주무관의 부인도 같은 생각이다. 전날까지도 무척 힘들었지만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보상을 요구할 수 있을텐데.
"아들을 잃은 대학생 가족도 피해자일 수 있다. 보상 요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서씨는 숨진 대학생의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언론보도를 통해 아는 듯 했다.

5분 여간 진행된 짤막한 대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구차량에서 양 주무관의 시신이 실린 관이 내려졌다. 주변에선 울음소리가 났다. 검은색 상복 차림의 양 주무관의 부인도 오열했다. 관이 화장 시설로 들어서려고 하자 부인을 비롯한 4~5명의 가족은 더욱 큰 소리를 내며 울었다. 관을 부둥켜 안고서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말 없이 동료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던 유근기 군수와 곡성군청 공무원들의 눈가에도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유 군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1시간여 만의 화장 후 나온 양 주무관의 유해는 영락공원에 안치됐다.

곡성군은 양 주무관이 야근을 마친 뒤 군청사를 빠져나와 곧장 집으로 향하던 중 사고가 난 점에서 공무상 사망(순직)을 신청키로 했다. 양 주무관은 공직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되지 않아 공무원연금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양 주무관은 지난달 31일 오후 9시48분쯤 자신이 사는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모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뛰어내린 대학생 유모(25)씨와 1층 입구에서 부딪혀 숨졌다.

당시 옆에는 버스정류장까지 남편을 마중나와 함께 집에 들어가던 임신 8개월의 부인과 6살짜리 아들이 있었다. 곡성군청 기획실 홍보팀에 근무하던 양 주무관은 영화 '곡성' 개봉에 맞춰 다양한 아이디어와 감각적인 업무로 곡성군 알리기에 앞장서왔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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