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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 솔로등반…인수봉 사망사고는 추락사 아닌 질식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5월 22일, 북한산 인수봉에서 솔로등반을 하던 등반가가 추락해 숨졌습니다. 꽤 인기 있는 취나드A 루트에서였습니다. 설치해 놓은 장비가 바위틈에서 빠지면서 추락 거리가 길어졌습니다. 15m 정도를 떨어진 겁니다. 사망자는 등반 경력 30년이 넘는 A씨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A씨가 추락에 의한 충격이 아니라 질식으로 숨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일행이 있었는데 솔로등반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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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 권혁재 기자

암벽등반은 대개 최소 두 명이 한 팀을 이뤄 진행됩니다. 선등자는 오르면서 장비를 설치하며 사고를 예방하는 작업을 합니다. 밑의 사람은 선등자의 로프를 잡아줍니다. 추락 시 제동을 걸어주는 것입니다. 솔로등반은 말 그대로 1인 등반입니다. 로프를 출발하는 지점에 고정시키고 그 로프를 자신이 착용하고 있는 안전벨트에 연결합니다. 오름짓을 하며 설치한 장비가 추락을 멈추게 해줍니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지점에 이르면 그곳에 자신이 끌고 온 ‘위쪽의 로프’를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하강을 합니다. 처음에 고정시킨 ‘아래쪽 로프’를 푼 뒤 위쪽에 고정돼 있는 로프에 장비(등강기)를 끼워 오르며 장비를 회수합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바위를 오르는 게 솔로등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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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봉. 권혁재 기자

독일의 게오르그 빈클러는 1888년 알프스 바이스호른(4506m)에서 솔로등반을 하다 소식이 끊깁니다. 19세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68년이 지나서야 발견됩니다. 얼음 속에서 10대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에밀 치그몬디는 1885년에 라 메이쥬 남벽 횡단 중 사망합니다. 이탈리아의 발터 보나티(1930~2011)도 유명한 솔로 등반가였습니다. 보나티는 솔로등반을 하며 밑에 놔둔 장비들을 한 번에 끌어올리는 홀링기법을 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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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가의 손. 권혁재 기자

보다 극단적인 등반법도 있습니다. 프리솔로(free-solo)입니다. 프리솔로는 추락에 대비한 장비가 없습니다. 손에 난 땀을 제거해 줄 가루 형태의 초크가 담긴 통과, 암벽화가 전부입니다. 더한다면 입고 있는 옷 정도입니다. 댄 오스먼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장비 없이 120m 높이 암벽을 불과 4분25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98년, 로프를 맨 채 300m의 절벽에서 자유낙하를 하다 고인이 됐습니다. 35세였습니다. 요즘엔 알렉스 호놀드(30)가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요세미티에서의 그의 등반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A씨처럼 국내에도 솔로등반을 하는 등반가들이 꽤 있습니다. 혼자서 인수봉 꼭대기에 200번 넘게 올랐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심심찮게 사고 소식이 전해집니다. 2013년 6월에 기자가 목격한 사망사고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숨진 A씨는 추락 직후 의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떨어지면서 장비가 경동맥을 압박, 질식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행이 있었지만 약속시간에 다소 늦었다고도 합니다. 처음부터 솔로등반을 생각한 것인지, 같이 할 사람이 없어 솔로등반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김창곤 북한산경찰구조대장은 “사고자는 등반경력이 30년 이상이고, 이틀 전에도 인수봉의 궁형길을 솔로로 등반한 베테랑이었다”며 “추락을 해도 장비가 목을 누르지 않게 미리 조치했다면 사망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산 인수봉에는 80여 개의 루트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최근 5년간 추락에 의한 사망자가 3명, 낙석으로 숨진 사람이 1명입니다. 산행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뒷산을 거닐거나, 북한산 둘레길을 걷거나, 암릉을 좇는 리지등반을 하거나, 수직과 오버행(90도가 넘는 각도)의 암벽등반을 하거나. 선택입니다.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산행은 집 현관문을 나서면서 시작되고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 끝납니다. 방심 곁에는 혹독한 대가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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