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방 어디까지 할 것인가|자유화 국내여건은 미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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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재 추진, 시행되고 있는 수입자유화조치는 시기선택과 추진속도에 있어서 공히 잘못되어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경제가 외채누증, 투자와 수출부진 등으로 어려운 상황 놓여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우위론을 바탕으로 국내경제의 효율성을 추구하기에는 국내여건이 아직 미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독·일본·대만 등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국제수지의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수입자유화를 추진했던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국제수지적자의 근본원인을 살펴보면 엄청난 대일 무역역조가 주범임을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일 무역역조의 감소를 위한 주요 대일 수입품목의 수입대체를 추구함이 외채문제를 완화하는 쉬운 길이 아닐까?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 수입론자들은 수입대체보다는 수출증대가 더 바람직하기 때문에 비교우위가 없는 수입대체산업에 종사하는 인적·물적 자원을 수출산업으로 이전하여 무역의 확대균형을 도모함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외채문제가 어렵지 않고 국내경기가 침체국면에 있지 않아 실업문제가 고려대상이 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옳다.
왜냐하면 산업간 자원의 재배분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수입의증대가 선행되고 수출의 증대는 일정한 시간의 경과 후에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이기간중에 나타나는 국제수지상의 적자와 실업의 증대를 감당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에만 이러한 자원 재배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수입론자들은 외채문제는 인정하지만 국내경기가 안정적 호황국면에 있는데 실업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 제조업이고정투자가 계속 저조하여 1980년부터 84년 사이의 연평균 취업증가율이 1·1%로 둔화되었고, 특히 84년에는 취업자수가 0·7% 감소했다는 지표적 사실과 우리나라의 4년제 대학 졸업자 수가 84년의 9만명 수준에서 86년에는 14만명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 실업이 문제가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자유화론자들은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외채와 실업문제가악화되는 정도의 희생을 치러야하는 게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경쟁이 제한된 상태에서는 국내기업의 경영합리화나 기술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입개방이 기업체질의 강화와 국내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목적으로 하지 국내기업의 도산 사태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면 여러가지 보완정책이 선행되었어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외국공급자의 덤핑과 스퀴즈 프라이싱 (Squeeze Pricing)에 대한 대비가 약하다. 덤핑은 단순히 가격을 낮추는 행위이지만 스퀴즈 프라이싱은 완제품가격은 유지하되 원자재나 부품의 가격을 높여 이를 수입해 가는 완제품생산자의 생산비용을 증가시킴으로써수입국의 완제품산업을 도태시키는 전략이다.
국내산업의 해외원자재·부품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스퀴즈 프라이싱에 의한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 이에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수입자유화 대상품목의 국내생산자와 해외 공급자간의 수직적 시장구조에 관한 비교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지 않다.
또한 수입자유화의 추진에 따른 급속한 수입의 증대로 인하여 나타나게 될 부실기업에 대한 대응책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때도 한은특융으로 대처할 것인가?
수입자유화론자들은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 소비자 선택의 자유 확대라는 마지막 카드를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호주머니가 텅텅 비어있는 경우 선택의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선 소득이 보장되어야 선택이고 뭐고 할 것이 아닌가.
수입자유화정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며 이는 현재 구성중에 있는 산업발전민간협의회를 활용하면 좋을 것으로 본다. 김광두<서강대 경제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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