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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두근두근 캠퍼스 ③] 응답하라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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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최남단 관악산 골짜기에 자리해 여간해선 올 일 없는 서울대.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 학교가 어딨나 두리번거리는 실수 한 번쯤은 겪는다던가. 5분쯤 기다려 셔틀버스를 타고 정문을 지나 본부까지 한참 들어가도 전체 넓이가 잘 짐작되지 않는다. 이곳에 학생 및 교직원 3만여 명이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러한 서울대 역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에 맞게 변화해 왔다. 20년 전에 서울대를 졸업한 기자가 캠퍼스의 변화상을 추적해 봤다. 체육교육과 재학 중인 남녀 선후배로 급조한 ‘가상 커플’의 안내를 받아 관악 캠퍼스를 누볐다. 먼저 커플의 알콩달콩 캠퍼스 데이트부터 감상해 보자.

#정문

흔히 '샤'라고 부르는 서울대 정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서울대가 나온다. '서울대'라 하면 역시 열쇠 모양의 정문이다. ‘국립서울대’의 머릿글자인 ㄱ, ㅅ, ㄷ의 형상을 본떴지만 흔히 ‘샤’라고 부른다. ‘Veritas Lux Mea(진리는 나의 빛)’가 적힌 엠블렘과 함께 서울대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정문 색깔은 늘 비슷한 청회색빛인 듯 하지만 실은 페인트칠을 새로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90년대 후반에 '샤'를 황토색으로 칠한 적이 있었는데, 96학번 이모씨의 증언에 따르면 선우중호 서울대 총장이 딸의 불법 고액과외로 불명예 퇴진하자 "교문에 똥칠을 하니 학교가 이런 망신을 당하지"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기도 했단다.

#서울대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나

서울대 옛 동숭동 캠퍼스의 정문. 문리과대·법대·미대가 있었다. 관악 캠퍼스로 이사 후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었으나 동숭동 캠퍼스의 명물인 마로니에나무를 따 현재의 마로니에 공원이 되었다. 경성제대 당시 지어진 서울대 동숭동 본관은 사적 제278호로 지정돼 한국예술문화예술위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서울대 캠퍼스는 원래 동숭동에 있었다. 지금도 의대와 서울대병원이 거기에 있다. 75년 이곳 관악으로 이사했다. 서울대생들이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에서 하도 데모를 해 군사정부가 산골로 몰아넣었다는 설이 있다고 정희성(국문과 64학번) 시인은 회고했다.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는 다소 오글거리는 기공식 축사를 쓴 분이다. 초창기 건물들은 군대 막사 스타일이라는 혹평도 있었지만 캠퍼스를 품은 관악산의 풍광만큼은 일품이다.

#아크로폴리스

본부동과 중앙도서관 사이 계단으로 된 광장, 아크로폴리스. 캠퍼스의 중앙에 자리해 접근성이 좋아 이곳에서 많은 집회와 축제가 열렸다. [사진=서울대 홈페이지]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 사이에 경사진 계단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학생들이 계단에 앉아 집회를 자주 열던 곳이라 ‘아크로폴리스’라 불린다. 옆 학생회관 벽에는 빼곡히 붙은 대자보와 결기에 가득 찬 문구의 플래 카드가 바람에 날리곤 해 엄숙한 느낌마저 풍겼던 곳이다. 지금은 미대생들이 귀여운 그림을 벤치에 그려놓아 한결 부드러운 분위기다.

#도서관

도서관 옆으로 오르는 길도 모두 계단이다. 중앙도서관 옆 통로에 다다르니 뒤편으로 가운데가 붕 떠 있는 초현대식 디자인의 관정도서관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삼영화학그룹의 설립자 관정 이종환(92) 선생이 쾌척한 600억 원을 비롯, 총 700억 원의 기부금으로 지난해 완공했다. 중앙도서관은 약 523만 권의 국내외 도서를 보유(대학알리미 통계), 국내 대학도서관으론 최대 규모다.

중앙도서관을 기역자로 감싼 관정관의 독특한 구조로 진입이 가능해진 중앙도서관의 옥상 정원은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다. 지난해 5월 KBS 1박2일팀이 야외 취침을 한 곳으로, 관악산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연인들의 숨겨진 데이트 코스로도 소문났다.

#자하연(紫霞淵)

사실 서울대 안에서 이른바 캠퍼스 커플의 성지라 하면 단연 자하연이다. 십여 그루의 단풍나무 등으로 고즈넉하게 둘러싸여 가을이 되면 더 예쁘다. 자하연으로 내려가는 길은 친환경 보도블럭으로 포장했다. 과거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바닥이 깔끔하게 정돈된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학생들이 자하연에서 시위용 돌멩이를 채취하지 못하도록 시멘트 덩어리로 만들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다.

자주빛 안개가 내리는 연못이란 이름은 이 일대의 옛 지명인 자하동천(紫霞洞天)에서 유래한다. 배우 김태희(의류학과 99학번)가 재학 시절 가끔 출몰해 벤치에 앉아 있었다는 제보가 많다.

#서울대의 먹거리

1. 자하벅스

일명 '자하벅스'라 불리는 자하연 옆 테이크아웃 매점에서 1000원에 파는 와플은 서울대에 오면 꼭 맛봐야 한다. 바삭한 벨지안 와플을 기대해선 안 되지만 100원을 추가해 생크림과 초코 토핑까지 해 놓으면 제법 근사하다. 96학번 이모씨는 “97년엔가 처음 생기자마자 빅히트를 쳤다”면서 “당시 캠퍼스 내 달콤한 먹거리가 없어서 줄을 서서 사 먹곤 했다”고 전했다. 당시 가격은 개당 500원으로 별도의 토핑값은 받지 않았다고. 또 다른 메뉴인 ‘커피 속 아이스크림’ 역시 1000원으로 요즘 카페에서 유행한다는 아포카토가 부럽지 않다.

2. 학생회관 1000원 학식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아침·저녁에 판매하는 1000원 학식. 저렴한 가격으로 식사할 수 있어 인기다. [사진=중앙포토]

학생회관의 1000원짜리 학식도 반응이 좋아 아침에만 제공하던 것을 최근 저녁까지 확대했다. 동행한 윤서영(체육교육과 14학번) 학생은 “가성비가 괜찮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고 말했다. 서울대의 각종 학식은 지역 주민이나 택시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다.

3. 서울대 카페 '이야기'

서울대에도 다양한 카페가 많이 생겼다. 학교 앞 번화가라 해 봐야 신림9동 고시촌 주변에 형성된 녹두거리(녹두집이란 주점이 있었다.)가 전부였던 시절 학관에서 파는 토스트마저 이국적이었다. 지금은 생협에서 운영하는 느티나무(서울대 교목) 카페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커피점, 홍대스러운 카페도 구석구석 들어섰다.

신축 로스쿨 건물에 입점한 ‘이야기’는 캠퍼스 내 상점 중 보기 드물게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매니저 백송이 씨는 “장식한 소품들을 손수 만들어 학생들이 좋아한다”면서 “동아리나 축제 영상을 촬영하러 많이 온다”고 밝혔다. 이제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도 빈 강의실을 전전할 필요가 없겠다.

#걷고 싶은 길

라일락 향기를 따라 걷자 발걸음이 자연스레 훈남훈녀가 많다는 음대와 미대에 닿았다. 음대를 지나자 성악과 피아노, 첼로 등 온갖 악기 소리가 뒤섞여 흘러 나온다. 서울대 김난도(법대 82학번) 교수는 고시 낙방과 집안의 줄초상으로 몹시 힘들 때 이 음대 벤치에서 눈물을 훔쳤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썼다. 엉터리 음정이 들릴 때마다 ‘언젠가 쟤들도 훌륭한 음악가가 되겠지’ 싶어 그렇게 위안이 됐다면서….

가로수와 바닥 등을 새로 단장한 ‘걷고 싶은 길’이 예대를 지나 경영대까지 이어진다. 벚꽃이 한창일 때는 길가에 띄엄띄엄 박아 놓은 조명등과 어우러져 어둑어둑할 때 더욱 운치 있다고 한다. 정문에서 왼쪽 순환도로를 따라 산중턱의 잔디밭 버들골로 올라가는 길도 산책하기 좋은 코스다. 요즘 같은 날씨가 버들골에 누워 사색을 즐기기에 가장 적합하다.

#마켓인유

순환도로 중간쯤 언어교육원 1층에 자리한 '마켓인유'에 들렀다. 체육교육과 03학번 김성경 씨가 창업한 대학 내 보기 드문 중고품 가게다. 쓰던 물품을 판매하거나 저렴하게 살 수 있다. 결국 먹거리, 볼거리에 이어 살거리까지 대학 커뮤니티의 완결판이다. 마켓인유 황정현 팀장은 “비가 내리는 날엔 공유 우산도 빌려 준다”면서 “공유 경제 개념이 더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미술관(MoA)

정문으로 다시 내려오자 수려한 건축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캔틸레버 구조로 대지의 경사를 따라 붕 뜬 모양의 독특한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1944~)가 설계한 미술관 MoA다. 시민들이 들어가는 교문 밖 입구도 따로 있다. 지난 2006년 삼성문화재단이 건립, 기증한 국내 최초 대학미술관으로 서울대 미대와 박물관의 소장품, 기증품 등 300여 점이 있고 기획전도 연 10회 이상 열린다. 입장료는 일반인 3000원, 청소년 2000원이다. 서울대생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20년 전엔 드물었던 기업 후원 건물

서울대 캠퍼스는 더 이상 칙칙한 잿빛의 성냥갑 건물이 아니었다. 시험을 마치고 해방된 얼굴로 강의실 밖으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의 옷차림도 화사했다. 대기업 후원을 받아 지은 세련된 디자인의 건축물도 즐비하다. CJ인터내셔널 센터, 롯데 국제관, 대림 국제관, SPC 농생명과학 및 기초과학연구동, 포스코스포츠센터, IBK커뮤니티 센터 등 내로라 하는 기업들은 죄다 서울대에 로고를 붙이고 있는 모양새다.

20년 전에는 SK 경영관 구관(1990년 10월 개관), 동원관(1996년 12월 개관) 정도가 기업 기부로 설립됐을 뿐 이런 건물이 몇 없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 내 반기업 정서도 거센 편이었다.

건물에 붙은 큼지막한 기업 로고를 가리키며 재학생들의 반응을 묻자 동행한 심재운(체육교육과 11학번) 학생은 “나쁘게 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고마워하지도 않는 듯하다”면서 “사실 뭘 하는 곳인지 학부생들은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 “가끔 해당 기업의 채용 설명회를 여는 걸 봤다”고 덧붙였다. 기부 덕분에 살림이 나아진 서울대가 나라 살림을 키울 인재로 갚는다면 선순환이 될까? 시인의 말이 허세가 아니길….

체육교육과 3학년 윤서영(왼쪽)·심재운

캠퍼스 안내 | 서울대 체육교육과 3학년 윤서영·심재운

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영상=전민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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