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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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괴저병」 공포 속에 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괴저는 글자 그대로 피부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의료학대사전』에는 그것을 『미생물의 감염에 따른 부패성의 괴사』라고 정의했다.
순환장애 등에 의해 괴사가 생기고 2차적 감염으로 부패성 염증이 생긴다.
아미노산, 단백 분해, 혈색소의 변질, 지방의 변성으로 흑갈색 오예가 나타나며 악취도 난다.
독일어로 이것을 Brand라고 한 것은 불에 덴 것 같은 겉 모양에 유래한다.
그러나 괴저는 현상이지 병의 이름은 아니다.
보사부 역학조사반은 지난 17일 이것을 공식적으로 「비브리오패혈증」(Vibrio Sepsis) 으로 명명했다.
패혈증은 신체 부위에 세균에 의한 감염병소가 있어서 그로부터 균이 혈류로 침입, 각종 장기와 조직에 전이병소를 만들어 중독증상을 나타내는 전신 감염 상태를 뜻한다.
균이 침입하기 쉬운 신체 부위는 피부화농증· 편도염· 담낭염· 담관염·신우염이 있을 때다. 그러나 「비브리오패혈증」 에 관해서는 아직 밝혀진바 없다.
일본 강담사간 전50권의 『의과학대사전』 에도 그런 항목은 없다.
다만 「비브리오」의 항목에서 비브리오균에는 클레라균과 장염비브리오균 등 5종이 있고, 그밖에 독립종 5종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 독립종 가운데 하나가 비브리오불니피쿠스(Vibrio vulnificus)다.
미국의 CDC (Center for Disease Control) 에서 76년 분리한 뒤 연구되고 있는 창상 감염이나 패혈증을 일으키는 비브리오다.
80년대엔 우리 나라와 일본에서도 분리됐다.
일본에선 이를 해수비브리오의 일종인 유당발효성비브리오 (lac(+)vibrio) 라고 부르고 있다.
같은 호염성인 비브리오 알기노리티쿠스나 비브리오 안귀라룸, 장염비브리오와 구분된다.
일본에선 장염비브리오가 오히려 중시되고 있다. 50년 대판에서 일어난 식중독으로 2백72명중 20명이 죽은 때문이다.
해산 어폐류와 날 생선을 즐기는 일본이 장염비브리오를 병원미생물학에 처음 등장시킨 것은 물론이다.
항생제로 치료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일본이나 미국은 비브리오 불니피쿠스때문에 난리를 치진 않고 있다. 그건 간질환자나 알콜중독자 등 특수한 사람에게만 위험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나라에서 어패류 값이 폭락하는 틈을 타 일본 상인들은 피조개·붕장어·문어 등을 싼값에 대량 수입해 가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괴저병 소동을 비웃으며 한국산 피조개를 식탁에서 즐길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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