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통합 健保 이제부터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일자로 건강보험 통합이 완성됐다. 의보가 출범한 지 3년 만인 1980년 10월 정부 내에서 처음으로 통합론이 제기된 이후 23년에 걸친 통합-조합주의 논쟁이 종지부를 찍게 됐으니 당사자들의 소회가 깊지 않을 수 없다.

이 논쟁의 중심에서 창과 방패로 치열하게 맞섰던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장관(현 한림대 교수)과 김종대 전 복지부 기획관리실장(현 경산대 객원교수). 이들은 같은 목소리로 "이제부터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한참 다르다.

車전장관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빨리 전국민 의료보장을 달성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건보 통합론의 부침에 맞물려 요동친 인생 역정을 살아온 그로서는 학자와 공직자로서 소신을 지킨 일에 보람을 느낄 만하다.

83년 보사부 보험제도과장 시절엔 정부 방침을 거스르고 직장-지역의보 통합을 주장하다 엉뚱한 누명을 쓴 채 옷을 벗었고, 99년 5월 김대중 정부에서 건보 통합 해결사로 화려하게 복귀했으나 1년여 만에 의료대란과 건보 재정 파탄으로 퇴진해야 했다.

올 2월엔 건강보험 통합추진기획단의 민간 공동단장에 임명돼 재정 통합까지 마무리했으니 대단한 집념이다.

그의 주장은 여유있는 사람들이 어려운 층을 돕는 사회연대성의 원리에 충실하면서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위해선 저부담-저급여 체계를 개선하고,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며, 재정 적자를 해소하는 등 통합 건보가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이런 과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金전실장의 "이제부터…" 말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통합의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복지부 안에서 대표적 조합주의자였던 그는 89년 3월 당시 공보관 시절 여소야대 국회가 통합의료보험법을 통과시키자 맹렬한 반대 활동을 벌인 끝에 결국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뜻을 관철했다.

그러나 기획관리실장 자리에 있던 99년 6월 차흥봉 장관의 건보 통합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다 직권면직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건보 통합이 한 사람은 몸무게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은 키를 기준으로 세금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한다.

직장과 지역 건보의 보험료 부과 기준이 달라 부담의 형평성이 보장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재정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직장 건보의 사용자에게 보험료의 50%를 부담시키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부작용이 곧 드러나 결국 제도 자체가 국민의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 같은 논쟁이 그동안 지루하게 계속되면서 우리 의료제도와 건강보험의 본질적인 문제가 방치돼 국민의 불신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진료비 본인부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고급 의료기술은 건보 적용을 받지 못해 '반쪽 보험'이란 오명을 얻었다. 건보가 감기 등 잔병에나 도움이 될 뿐 암이나 신장병 등 중병에 걸리면 온 재산을 날려야 하는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불합리한 수가 체제로 매년 중소병원 열곳 중 한곳꼴로 도산하고, 돈이 되는 진료과목에만 의사가 몰리는 왜곡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국민 의료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보험료를 적정하게 올리는 일도 매우 어려운 과제다.

논쟁이 마무리된 이제부터가 중요한 것은 정부와 국민이 지혜를 모아 건강보험의 본질적인 문제에 관한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조합주의자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길이다.

한천수 사회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