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통령 순방 중 거부권 가능” 정의화 “국감 폐지” 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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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이 24일 ‘상시 청문회’를 도입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감독하는 정책 청문회를 활성화시키면 국정감사는 안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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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월 24일자 3면 ‘상시 청문회법 대안’ 기사.

정 의장은 이날 국회 본청 출근길에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마주치자 “내가 알기로 세계에서 국정감사를 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며 국감폐지론을 거론했다. <본지 5월 24일자 3면>

청와대, 상시 청문회법 불가 굳혀
거부권 뒤 재의결 가능한지 논란
우상호 “거부권 땐 국회가 정부 거부”

국감을 폐지하되 상시청문회를 도입한 국회법 개정안에 청와대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자는 중재안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을 시행하는 건 불가하다는 입장을 굳히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법제처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넘겨받아 ‘3권분립 위반’ ‘행정력 마비’ 등의 위헌성 검토에 들어갔고,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오면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상시 청문회법이 불가하다는 방침이 내부적으로 섰다”며 “법제처 결과가 나와야 하는 만큼 방법과 시기 등을 고민해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헌법학자 출신인 새누리당 정종섭 당선자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상임위가 ‘소관 현안’에 대한 조사청문회(Investigative Hearing)를 새로 도입해 시행할 경우 대통령제에서 국회와 행정부 간 권력분립원리에 있어서 심각한 위헌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사·재판과 민간 기업까지 조사가 실시되면 국가기능 자체가 와해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법제처 검토 결론은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프랑스 순방(25일~6월 4일) 기간 중 나올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순방기간 중이라도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위임을 받아 오는 31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공포하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부권 행사 시 국회법 개정안의 ‘운명’에 대해선 양론이 엇갈린다. 20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재의결(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법률로 확정)할 수 있다는 주장과 19대 국회 임기(5월 29일)가 끝난 만큼 자동 폐기된 것으로 보고 20대에서 새로 법안을 발의해 본회의 통과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새누리당 법사위원인 김진태 의원은 “헌법학자들의 검토 결과 국회의 ‘회기 불연속원칙’에 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필요도 없다”며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 국회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도 공포가 되지 않으면) 그냥 없어지고 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동폐기론에 따를 경우 상시청문회법뿐 아니라 지난 19일 본회의를 함께 통과한 128건의 다른 법안도 모조리 폐기된다는 말이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20건, 18대 국회가 처리한 법안 28건을 각각 국회 임기가 끝난 뒤 법률로 공포한 예도 있다.

결국 거부권을 행사해야 상시 청문회 시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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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가 (행정부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우 원내대표는 “의회민주주의를 어떻게 보고 이런 접근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나라가 돌아가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도 기자들에게 “지금 (개정안) 정도의 제도가 국회가 제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라고 강조했다.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 의장의 주장과 관련, “정책청문회를 활성화하는 대신 차제에 비효율적인 국정감사는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효식·김경희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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