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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반려동물 잃은 10명 중 8명 '우울' 이별의 상처 치유법 미리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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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솔(30)씨가 반려견 이루미(3·푸들)와 놀며 웃음 짓고 있다. 반려동물은 인간과 감정을 교류하며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프리랜서 장석준]


반려동물 상실감 ‘펫로스증후군’

우리나라에서 등록된 반려동물은 100만여 마리에 달한다. 반려동물은 ‘애완’의 의미를 넘어
‘반려자’로 자리매김했다. 인간과 함께 뛰놀고, 곁에서 마음을 나눈다. 그만큼 신체·정신적인 영향도 크다. 반려동물과 함께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소개한다.



동물에 집착 … 사회성, 대인관계 단절시켜

유모(63·여)씨는 반려견 때문에 딸(37)과 싸우는 일이 늘었다. 처음에는 실직한 딸의 웃음을 되찾아준 반려견이 고마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려견을 향한 딸의 애정이 과해졌다. 직장을 구하지도 않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지도 않았다. 매달 반려견의 미용·사료·병원비로 수십만원을 쓰는 것도 못마땅했다. 대화도 해보고 화도 냈지만 딸의 행동을 바꿀 순 없었다.

동물은 우울증·알코올중독 같은 여러 질환의 치료에 폭넓게 활용된다. 미국에서는 600여 곳이 넘는 병원이 동물매개치료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는 “동물은 인간에게 친밀감의 욕구를 채워준다.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의 가치와 존재 의미를 찾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은 사람처럼 생각과 가치관을 나누지 못하지만 배신하지 않고 애정을 쏟는 만큼 보답한다. 단순하고, 예상 가능한 반응은 인간에게 큰 위로와 안정감을 준다. 서울대 의대 감염병연구소 모효정(의료윤리) 교수는 “과거 ‘놀이 대상’으로 여겼던 동물이 이제는 함께 생활하며 정서를 교류하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동물과의 교감이 자칫 사회성 저하나 인간관계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친밀감의 욕구를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만 풀 때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반려동물을 향한 과도한 의미 부여나 몰입이 집착으로 발전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

반려동물의 감정은 인간에게 ‘전염’되기도 한다. 펫토이동물병원 최영환 원장은 “반려동물도 우울증을 겪는다. 자신의 몸을 심하게 핥거나 눈에 띄게 움직임이 줄면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1인 가구에선 반려동물이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 이런 감정 변화를 겪기 쉽다. 조철현 교수는 “이 경우 동물과 인간이 함께 ‘감정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물과의 감정 교류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그 주체가 자기 자신이 돼야 한다. 조철현 교수는 “반려동물을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왜 반려동물에 마음을 쓰는지, 반려동물과 상호작용을 할 때 일정한 패턴이 있는지 돌아보고 이를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환 원장은 “주인이 행복해야 동물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변의 조언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반려동물을 폄하하거나 당사자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자칫하면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로 오해할 수 있어서다. 반려동물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을 공유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펫로스증후군’ 사회적 지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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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서(30·여·가명)씨의 반려견 루비(요크셔테리어)는 4년 전 세상을 떠났다. 집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어머니(59)의 충격이 컸다. 한동안 동물 얘기만 나와도 어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이씨의 동생(27)은 루비가 썼던 담요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13년간 키워온 루비는 가족과 마찬가지 존재였다”며 “루비가 죽은 뒤 느낀 공허함이 무서워 다른 반려동물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상실감과 우울증 같은 정신장애도 유발할 수 있다. 이를 ‘펫로스증후군(반려동물 상실증후군)’이라고 한다. 조철현 교수는 "감정 교류가 많을수록 정서적인 영향도 크게 받는다”며 “인간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이 배우자와 가족의 죽음이다. 가족처럼 지내던 반려동물을 잃는다면 부정·분노·죄책감·비애 등 가족의 죽음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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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간대에서 반려동물을 잃은 성인 174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85.7%)이 슬픔·고독감·죄책감 등 펫로스증후군을 경험했다. 10명 중 2명(22.4%)은 1년 뒤에도 이런 감정이 지속됐다. 반려동물을 잃은 부부 242쌍을 조사했더니 남편은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과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아내는 자녀의 결혼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한 수준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미국가족학회, 1991년).

우리나라에선 아직 펫로스증후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상태다. 모효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인정받지 못한 비애’다. 사회적으로 지지받지 못해 숨기거나 억누르다 보면 분노·적응장애·복합비애 등 어긋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12년에는 반려동물을 잃고 난 뒤 우울증에 시달리던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펫로스증후군을 줄이기 위해서는 반려동물의 수명이 짧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죽은 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방법을 미리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속 시원히 표현할 ‘창구’를 마련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모효정 교수는 “반려동물 커뮤니티나 추모 사이트에 가입해 의견을 나누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감정 변화가 한 달 이상 계속되거나 환각·환청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조철현 교수는 “사별 반응은 고착화될수록 치료가 어렵다. 증상 기간이 얼마인지, 평소 하던 일을 못하게 됐는지 따져보고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물 비듬·침도 알레르기 유발

반려동물은 훌륭한 ‘운동 동료’다. 운동 동기를 유발하고 다양한 움직임을 유도해 신체발달을 돕는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의 60%는 건강관리를 위해 1주일에 7회, 30분 이상 걷기 운동을 실천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힘이 센 큰 개는 자칫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동물의 종류와 자신이 앓는 질환, 몸 상태를 충분히 고려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최영환 원장은 “환경이 변화하면 동물도 전에 보지 못한 과격한 행동을 나타낼 수 있다. 적응시간을 충분히 갖고, 산책할 땐 올가미식 목줄(초크체인)을 활용해 행동을 조절해 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려동물로 인한 알레르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 꼽힌다. 털은 물론 비듬·침·소변 모두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건국대병원 이비인후-두경부외과 조재훈 교수는 “알레르기 증상은 동물과의 노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악화한다. 동물을 들이고 수개월이 지나 재채기·콧물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동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물을 멀리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키워야 한다면 목욕을 자주 시키고 거주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

흔치 않지만 반려동물의 기생충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개의 회충, 고양이의 톡소포자충이 대표적이다.

한림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허선 교수는 “개 회충이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 눈이나 뇌를 공격해 시력 손상이나 발작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고양이의 톡소포자충은 대두증 같은 기형아 확률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개 회충은 분변이나 어미 개의 태반을 통해 자식 개로 전파된다. 그 때문에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새끼를 분양받을 때는 사전에 구충제를 먹였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기생충은 반려동물을 만지거나 쓰다듬는 것만으로는 감염되지 않는다. 허선 교수는 “반려동물의 건강이 인간의 건강과 이어지는 만큼 건강검진이나 위생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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