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의사당…누구의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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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5일 하오 야당만의 참여로 열린 제l26회 임시국회개회식에서 노국회의장은 불참한 민정당의원들의 의석을 굽어보며 『반넘어 텅빈 의사당의 모습을 접하니 심회가 착잡하기 짝이 없다』고 술회했다.
기세 있게 단독소집을 강행했던 야당의원들도 막상 단독국회의 심중한 모습 때문인지 시종 묵묵히 개회사를 경청했다.
그 몇시간전 의사당 안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개회식 불참을 결의하고 의사당을 떠난 민정당의원들의 심정도 오죽했을까 싶다.
파행국회의 모습을 보고 여든, 야든 모두 마음 한 구석이 얹짢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파행을 초래하고만 여야의 논리는 참으로 각박하다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신민당 측의 국회단독소집에 대한 민정당측 비판의 골자는 『당내계파간 갈등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는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당내사정이 복잡한 신민당이 전당대회를 앞둔 치열한 당권경쟁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한 것이지, 국정을 진지하게 논의하자는 의도가 아니라는 비난이다. 사면·복권을 성실히 추진하지 않았다는 당내공격이나 면해보려고 제헌절 이전에 「정치굿」을 한판 벌일 작정으로 15일에 부랴부랴 소집했다는 주장이다.
민정당의 비난이 부분적으로는 정곡을 찌르는 대목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야당의 술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국회에 응하지 않는다』는 전략이 국회에 대한 국회의원의 의무나 책임이라든가, 소수의견의 존중이라는 더 큰 원칙보다 앞설 수는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
헌법과 국회법은 국회의원 3분의 1이 국회소집을 요구하면 국회를 지정한 일자에 무조건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국회의원 3분의 1이 대표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국회가 반드시 회의를 열어 검토해봐야 한다는 정신을 담은 것으로 여겨진다.
법으로 정한 소수의견존중의 최소한이라는 뜻인 것 같다. 그렇다면 소집의 과정이야 어떻든 국회를 성립시켜야 한다는 것은 어느 측에나 당연한 요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제헌절 이전이라서 안되고, 전당대회 이전이라서 안 된다고 하기보다는 국회 안의 토론과정에서 그들의 속셈이 드러나도록 해야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여당이 끌려다닐수 없다거나, 나쁜 선례를 남긴다든가 하는 것은 감정적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억누를 줄 아는 것이 다수당의 금도이기도 할 것이다.
신민당으로서도 이번 사태의 인과관계를 냉정히 자성해볼 대목이 많다. 단독소집의 동기나 타이밍이 반드시 순수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당초 학원 노사문제가 발생했을 때 임시국회를 열자고 소리 높여 외쳤었다.
그러나 그때 신민당이 이번과 같은 추진력이나 열의를 과연 보였던가. 수재가 났을 때, 특융이 실시됐을 때도 몇 번 떠들다간 그만이였다. 당내문제로 발등에 불이 붙어 내닫게 됐을 때엔 시간은 너무 늦었고 초점마저 흐려지고 말았다.
신민당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고 물을 만하다.
여야는 이제 뒤늦게 단독국회사태로 인한 정국경색을 피하기 위해 절충에 나서고 있다.
국회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먼저 국회를 소중히 다뤄야할 때다. 그리고 결과의 최선보다는 절차의 최선에 더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할 때인 것 같다. <김영배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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