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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일주일 전 막걸리 마시던 손학규 “그래, 한번 해 보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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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6 면

“그래, 한번 해 봅시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을 일주일여 앞두고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남 강진군의 한 식당에서 측근 인사와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4·13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의 향배와 정계개편론을 놓고 격론이 오가던 중이었다. 이 측근이 “새판을 짜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손 전 고문이 결국 반응을 보인 것이다. 소문난 애주가인 손 전 고문은 식당 주인이 “그만 마시고 집에 가라”고 할 때까지 측근과 함께 막걸리를 18통이나 비웠다.


그리고 18일이 찾아왔다.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마친 뒤 지지자들과 함께한 오찬 모임에서 그는 “새판을 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내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실업이 말도 못하게 늘어나고 있다. 그 분노와 좌절의 표시가 4·13 총선 결과”라면서다. 지지자 500여 명은 “손학규 대통령”을 연호했고 언론은 이를 ‘1년9개월여 만의 정계 복귀 시사’로 받아들였다.


‘손학규의 새판짜기론’이 처음 등장한 건 지난 1월 말이었다. 러시아 출장에서 돌아온 그는 공항에서 “새판을 짜서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우물에 빠진 정치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을 보여 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가 새판을 짤 수 있을지, 어떻게 짤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며 ‘누가 짜든 새판을 짜야 한다’는 당위론적 표현을 쓰더니 이번엔 ‘내가 앞장서겠다’고 한 발 더 나갔다. 본격적인 복귀시점은 정계 은퇴 2주년이자 그의 싱크탱크 동아시아미래재단이 창립 10주년을 맞는 7월 중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사실 그의 은퇴 선언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정계 은퇴를 했으면 집에 가서 쉬고 친구들과 만나고 학교에서 강의하면 될 일인데 왜 야권의 심장인 전라도 강진에 들어갔겠는가”라며 “손 전 고문의 가장 큰 약점은 너무 연기를 못한다는 것”이라고 꼬집곤 했다. 손 전 고문의 측근들도 사석에선 “강진 칩거는 재기를 준비하며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1년9개월 동안 강진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다)를 했으니 당연히 다음 목표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일 것”이라고 했다.


손 전 고문이 강진에서 다듬어 온 건 다산 정약용 정신이었다. 그는 지난달 7일 ‘다산 정약용에게 배우는 오늘의 지혜’ 특강에서 “좀 더 가까이서 다산 선생의 체취를 느끼고자 선생의 유배지였던 강진을 선택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매일매일 다산초당을 찾았다. 다산초당은 다산이 유배 중이던 1808년부터 10여 년간 머물며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곳이다. 손 전 고문은 거처인 토담집 근처의 백련사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엔 1.5㎞ 떨어진 다산초당에 다녀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빼놓지 않았고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가 밤늦게 홀로 다녀오기도 했다. 손 전 고문과 자주 막걸리를 함께 마시는 한 ‘술벗’은 “밤 12시에 혼자 다산초당에 가서 무엇을 했겠느냐.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러 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윤동환 전 강진군수는 강진군의 부모님 집터를 손 전 고문에게 내줬다. 손 전 고문은 이곳에 나중에 살 집을 짓기 위해 착공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윤 전 군수의 6대 조부인 귤림처사 윤단은 다산에게 집(다산초당)을 내줬던 인물이다. 윤 전 군수는 “2년 가까이 토담집에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 온 손 전 고문은 청렴·정직이라는 다산 정신을 제대로 계승할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정계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손 전 고문 주변에선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유명 역술가가 ‘손학규 평생에서 내년에 가장 큰 운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그를 찾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최근엔 20대 국회 국회의장직을 희망하는 이들이 강진을 찾았다가 손 전 고문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섰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읍내에 별도의 거처까지 마련했다고 한다.


‘새판’은 정계 복귀를 시사한 손학규의 화두다. 그가 말한 새판은 뭘까. 제1당이 됐지만 호남에서 완패한 더민주, 호남을 석권했지만 그 이외엔 기반이 없는 국민의당, 야권이 분열되면 ‘대선에서 필패’하리라 걱정하는 야권 지지자들의 불안감, 새누리당발 정계개편론 등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하지만 그도, 두 야당에 나뉘어져 있는 소위 ‘친손학규’계 의원·당선자들도, 대학 시절 교수로 손 전 고문을 모셨던 오랜 제자 그룹도 새판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지난 18일 ‘사실상의 정계 복귀 선언’이 나오기 직전에도 그와 가까운 한 야당 의원은 “총선에서 손학규계가 많이 당선됐다지만 어차피 아웃사이더들이다. 더민주는 문재인이 ‘노(No)’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문재인당, 국민의당은 완전히 안철수당이라 손학규의 역할 공간이 너무 좁다”며 조기 복귀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손 전 고문이 한 발을 더 내디딘 건 ‘시간이 흐르면 복귀 자체가 어려워지니 뭔가 한 자락을 깔아 둬야겠다’는 심정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의 한 친손학규계 의원은 “마지막 기회인데 눈치 볼 것이 없다. 모든 정당이 취약해져 있는 상황이라 지형은 나쁘지 않다”고 했다. 손 전 고문의 한 참모는 새누리당발 정계 개편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2012년 경선 때만 해도 그에겐 ‘주홍글씨’였던 한나라당 출신이란 딱지가 이제 ‘여야 진영 파괴’라는 창조적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의 앞길엔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변수가 함께 깔려 있다. ‘협치와 연정’ ‘권력 나누기’ 등 여소야대 정국에서 떠오른 최근의 화두들은 과거 ‘합리적 진보주의자’로 불려 온 그의 노선과 맞아떨어진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는 “어느 한 정당도 단독 과반을 하지 못하고 서로 대화와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손 전 고문이 대선에 출마한다면 선거제도 개혁과 권력구조 개편이란 화두를 들고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왜 손학규인가’를 부각해야 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 왜 갑자기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왜 지금 복귀하려 하는지, ‘셀프 은퇴와 셀프 복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도 필요하다. “그에게 정치판을 뒤흔들 힘이 남아 있는지, 그가 깃발을 들더라도 문재인당과 안철수당의 ‘친손학규계’ 의원들이 결집해 줄지 모르겠다”는 정치권의 의문도 그가 풀어야 한다.


그래서 복귀 자체에 신중론을 펴는 측근도 많다. “복귀라고 단정하기엔 섣부르다. 객관적 여건이 무르익어야 한다”(더민주 전혜숙·강훈식 당선자), “각 당의 전당대회가 끝나고 체제가 정비된 뒤 국민이 정계 복귀에 얼마나 마음을 열어줄지 지켜봐야 한다”(국민의당 신학용 의원)는 주장들이다. 손 전 고문과 가까운 더민주 의원은 “새판을 짜려면 총선 전에 나서야 했다”며 아예 복귀 반대론까지 표명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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