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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선 외교전문가 ‘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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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고려대 남성욱(외교통일안보학부) 교수는 19일 “핵·미사일 위협으로 더 위험해진 북한 문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으로 아슬아슬해진 한·미 관계 등 외교안보 이슈가 즐비한 상황에서 20대 국회에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인사가 안 보여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남 교수가 걱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트럼프는 한·미 동맹 흔들고
역사왜곡·MD 등 현안 많은데
통일·국방 경력자도 8명뿐

중앙일보 취재팀이 20대 국회 당선자 300명의 경력을 전수조사한 결과 외교부나 외교 관련 싱크탱크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당선자는 전무했다. 역대 국회 중 처음이다.

19대 국회에선 새누리당 심윤조·김종훈 의원 등이 외교부 출신이었고, 18대 국회(한나라당 박진·통합민주당 송민순 의원)와 17대 국회(열린우리당 정의용·한나라당 박진 의원), 16대 국회(새천년민주당 김운용·한나라당 조웅규 의원)도 외교관 출신 인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선 ‘외시 4인방’(김종훈 8회·이수혁 9회·박진 11회·심윤조 11회)이 모두 낙선 또는 낙천했다. 현 정부 주중 대사를 지낸 권영세 전 의원, 주상하이 총영사를 역임한 구상찬 전 의원까지 줄줄이 낙선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 내에서도 ‘외교 전문가 없는 20대 국회’에 대한 우려가 크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 현안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질 텐데 관련 경력과 지식을 갖춘 외교 자원이 전무하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범위를 넓혀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출신을 살펴봐도 20대 국회는 최저 수준이다.

외통·국방 상임위 인물난…“전문가 영입, 초당적 협력을”

취재팀이 외교부·국방부·통일부·국정원 등 관련 부처 고위직 근무 경험이 있거나 관련 연구기관 근무 경험이 있는 인사들을 분류한 결과(군 출신 인사는 장성급 이상) 8명에 불과했다. 새누리당 이철우·김성찬·김종태·백승주 당선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당선자, 국민의당 정동영·김중로 당선자, 정의당 김종대 당선자 등이다. 반면 법조계 출신은 49명이나 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국방위원회에선 20대 국회 임기 개시(5월 30일)를 앞두고 인물난까지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국회가 하는 일이 특정 국가에 의도치 않은 외교적 암시를 줄 수도 있다. 이런 외교적 민감성을 경험 없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일본 정치인들이 역사 왜곡 발언을 할 때마다 국회가 규탄 결의안을 낸다면 국내 정서에는 부합하겠지만, 외교적으론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문제, 미사일방어(MD) 체계 문제 등 미·중 사이의 예민한 갈등 현안 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일본대사관에선 지일파로 분류되는 심윤조·김태환 의원이 낙선하자 크게 놀랐다고 외교가 소식통은 전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학부) 교수는 “대북제재 국면 이후 남북관계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미·중 관계나 미·일 관계가 한층 복잡해진 동북아 정세에서 한국의 외교안보 좌표를 어떻게 설정할지는 국익이 달린 핵심 어젠다”라며 “20대 국회가 대외 관계에서 중심을 잡고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아산정책연구원 봉영식 초빙연구위원은 “협치가 국회와 정부 부처 사이에도 필요하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회 밖 전문가 등과도 활발히 소통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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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연구소 이상현 동북아평화협력연구센터장은 “각 당 연구기관에 전문 인력을 영입하고, 의원들도 스터디 모임을 통해 초당파적 연구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20대 국회의 외교안보 전문성 부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외통위 소속이었던 길정우 의원은 “미 의회의 영향력은 철저하게 국익 차원에서, 여야 전문가 의원이 모여 외교 현안을 논의하는 비공식 소규모 협의 코커스에서 나온다. 20대 국회도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실질적인 대정부 견제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구·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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