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문화의 "신비와 영화"재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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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경주 월성로 고분군 발굴은 신라문화의 신비와 영화를 다시 한번 감탄케 했다.
모두 31기의 고분발굴 중 왕자와 공주들의 무덤으로 추정된 2개의 고분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제 부장품 장신구들은 한국 문화재 목록에 또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 또 각 고분에서 발굴된 토기들은 토기편년사를 새롭게 수정, 편성해야할 귀중한 고고학적 학술자료를 제공했다.
주로 13호 분에서 쏟아져 나온 순금 장신구들은 75년 경주 98호 고분 발굴이후 10년 만에 처음인 금제 문화재의 수확이었다.
특히 월성로고분군 출토의 금제 장신구들은 만든기법이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백제의 목걸이·귀걸이·팔찌들보다 훨씬 시대가 앞서는 고식의 최고문화재들이다.
이번 출토된 금목걸이·금귀걸이 등은 금세공전문가들과 금속공예학자들의 감정결과 사슬 식의. 이음법 및 가는 고리장식 등으로 미루어 굵은 고리장식이나 접합 식 이음법 보다 1세기 정도 앞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금귀걸이·금목걸이 등의 장신구는 대체로 5세기말 이후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번 출토된 신라 왕자와 공주들의 장신구는 함께 출토된 토기 및 기타 유물 등의 연대 및 세공 법 등으로 보아 4세기말∼5세기 초의 것으로 확인됐다.
13호 분에서 나온 2개의 금목걸이는 각각 둘레가66㎝, 60㎝의 사슬 식 이음이다. 지금까지의 고분발굴에서 처음 나온 금과 검은 유리 제 가슴장식은 길이28㎝,폭5㎝의 크기로 화려한 의식 용 장신구-.
또 13호 분 출토의 대형장식용 금귀걸이(길이25㎝)는 모두 사슬 식 이음법으로 금장식들을 연결했다.
그러나 적석분인 5호 고분에서 나온 금귀걸이(길이5.5㎝)는 시대가 훨씬 뒤떨어지는 굵은 고리의 접합 식 이음이었다.
역시 이 고분에서 나온 황갈색의 고구려 연유토기항아리(높이11㎝, 구경8㎝)는 경질이 아니고 연질이다.
연유는 삼국시대 고구려에만 있던 아주 귀한 유약 이었고 신라에서 고구려연유토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 황갈색 토기항아리는 기형과 유약으로 미루어 고구려 토기로 확인됐다.
이밖에 11호 고분에서 출토된 뱀이 개구리를 물고있는 장식의 신라토기 항아리뚜껑(지름 20㎝)과 토기뿔잔 (직경6㎝, 길이13㎝)도 일품으로 평가됐다.
29호 분에서 출토된 직경8·3㎝의 일본 돌 팔찌는 당시의 신라-일본간의 교류를 통해 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귀중한 문화재의 하나였다.
이번 발굴의 또 한가지 특징은 지금까지의 고분 발굴에서는 고식 토기와 금제품·유리제품이 나온 일이 전혀 없는데 같은 고분에서 토기·금제품·유리제품이 일괄 출토 됐다는 점이다.
토광묘인 29호 분에는 일본 돌 팔찌 이외에도 만호 목걸이 1개·유리 목걸이 1개 등이 토기들과 함께 나왔다.
고분들은 아래로 겹쳐져 밑의 고분에서는 고식의 가야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각 고분에서 출토된 4백50여 점의 토기들은 대체로 4세기 말∼5세기 초의 것들로 감정됐다. 이들 토기들의 연대를 규명하는데는 고구려 연유토기·고식 가야토기 등과 함께 부장 된 금제품들이 결정적 자료가 됐다.
현재까지의 신라 토기편년은 기원전 1세기∼3세기까지의 연질토기와 5세기말∼6세기 초부터의 경질토기로 구획돼 있을 뿐 4세기∼5세기 초가 공백상태다.
따라서 월성로 고분군 출토의 4세기말∼5세기초 토기는 고고학 계의 토기연구와 토기편년 조정에 결정적 자료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모은다.
원래 월성로 고분발굴은 학술발굴이나 문화재발굴의 목적으로 출발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주시가 장마전의 하수도관 교체공사(경주전∼박물관)추진 중 1m깊이의 구관을 들어내고 80㎝정도 더 깊이 파고 묻으려다 발견돼 발굴을 의뢰했던 것이다. <글 이은윤기자 사진 조강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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