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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16> 텍사스 카우보이의 맥주 즐기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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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워스에서 가장 오래된 웨스턴 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포트워스 스톡야드 풍경.

“일단, 맥주 한잔할까요?”

여행 중에 이 말만 들으면 머릿속에 전구가 탁 켜진다. 아무리 여정이 고단하고 시차 적응 실패로 눈이 감기다가도, 갑자기 동공이 확대되며 그 지역 맥주에 대한 탐구 정신이 샘솟곤 한다. 머리 위로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라면 더욱.

카우보이 문화가 짙게 남아 있는 미국 남부 텍사스에서도 ‘카우보이의 수도’라 불리는 포트워스(Fort Worth)에 갔을 때다. 강렬한 햇살이 ‘포트워스 스톡야드(Fort Worth Stockyards)’ 위로 쏟아졌다. 포트워스는 1870년대 중반 철도가 개통된 후 가축거래소가 번창하며 소 무역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그 시절 소와 함께 카우보이들이 포트워스 스톡야드로 몰려들었고, 지금도 진짜 카우보이가 이곳을 활보한다. 여전히 웨스턴 바가 즐비하며 스톡야드 로데오 경기장에선 로데오가 열린다.

포스워스 스톡야드에서 꼭 봐야 하는 소몰이 쇼, 캐틀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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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야드 박물관 앞거리에선 하루 두 번 카우보이의 소몰이 쇼, 캐틀 드라이브(Cattle Drive)도 거행된다. 말을 탄 3명의 카우보이와 1명의 카우걸이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소떼를 몰고 지나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캐틀 드라이브 구경꾼 중 맥주병을 든 이를 발견했다. 미국에선 길거리에서 음주가 불법이지만 포트워스에서는 합법이란 설명엔 광대가 움찔했다. 서부 개척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리를 활보하며 마시는 맥주라니, 이 얼마나 거침없이 낭만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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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화점 매버릭에서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맥주를 파는 점원.

당장 맥주병을 들고 거리를 누비고픈 마음을 누르고 잡화점, 매버릭(Maverrick)으로 향했다. 어라, 맥주를 마시며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닌가. 심지어 가게 한편에 바(Bar)가 있었다. 동시에 바를 발견한 일행이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넸다. “일단, 여기서 맥주 한잔할까요?”

우리는 ‘또 하나의 국가, 텍사스의 대표 맥주’라 불리는 론스타(Lone star) 병맥주를 사이좋게 나눠 마셨다. 물처럼 술술 넘어가는 라거로 시원하지만 다소 밍밍했다. 거친 카우보이에게 어울릴 법한 맛은 아니었다. 카우보이들이 마시는 이 동네 맥주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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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펄로 버거와 잘 어울리는 버펄로 벗 맥주.

햄버거를 먹으며 지역 맥주를 맛보기로 했다. 100% 버펄로 패티로 만든 ‘버펄로 버거’로 유명한 트레일보스 버거(TrailBoss Burgers)에는 포트워스의 라앤썬(Rahr&Son)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가 3종 있었다. 텍사스 레드(Texas Red), 라스 블론드(Rahr's Blonde), 버펄로벗 (Bufflo Butt). 딱 들어도 카우보이가 연상되는 이름만큼 레이블도 익살스러웠다. 텍사스 레드엔 소몰이 중인 카우보이가, 라스 블론드에는 금발의 미녀가, 버펄로 엉덩이란 뜻의 버펄로 벗에는 버펄로 엉덩이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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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워스를 대표하는 지역 맥주 삼총사.

텍사스 레드와 버펄로 벗 맥주는 색이 붉어, 레드 에일(Red Ale)이라고도 불리는 앰버 에일(Amber Ale)이었다. 보석 호박의 붉은 빛깔을 내기 위해 캐러멜 몰트(Caramel malt)를 사용해, 약간 달달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특징이다. 홉이 많이 들어간 IPA만큼 홉 향이 느껴지지는 않아도 기름진 햄버거와 제법 잘 어울렸다. 둘 중 조금 더 바디감이 있는  버펄로 벗에 더 후한 점수를 주려는 찰나 포트워스 관광청 직원이 솔깃한 얘기를 들려줬다.

에이치3 바에서 탭(Tap)으로 즐길 수 있는 맥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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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버펄로 벗은 에이치3라는 웨스턴 바 공급용으로 라앤썬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라는 거다. 에이치3에 가면 벽에 버펄로 엉덩이가 걸려있고, 바 의자의 일부는 말안장으로 돼있어 말을 타는 카우보이가 된 기분으로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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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3 바의 명물, 말안장 의자가 놓인 바.

내친김에 찾아간 H3에는 카우보이모자를 쓴 할아버지들이 맥주를 즐기고 이었다. 듣던 대로 바에는 말안장으로 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를 카메라에 담으며 19세기 카우보이가 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영화 장면을 떠올렸다. 농지는 부족하고 악당은 들끓던 서부 개척시대, 소떼를 몰며 유목민처럼 떠돌던 카우보이에게 바에서 마시는 맥주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만큼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맥주로 갈증과 흙먼지를 씻어내고 나면, 다시 안장에 오를 기운이 나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말안장 의자 위에 오르니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카우걸이 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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