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먼삭스의 ‘유가 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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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시장의 재균형(rebalancing)이 시작됐다.”

월가 투자은행(IB) 골드먼삭스의 보고서 한 장이 원유시장을 뒤흔들었다. 보고서는 최근 원유시장의 ‘갑작스런 과잉생산 중단(sudden halt)’을 짚어내고 있다.

“하반기 50달러, 시장 재균형 시작”
보고서 나오자 WTI 48달러 돌파
월가 IB “40~50달러 선 안정될 것”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는 무장단체의 공격으로 송유관이 폐쇄돼 석유생산이 10여 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캐나다 유전지대인 앨버타지역에서 대형산불이 나면서 석유시설 가동이 일부 중단됐다. 베네수엘라 등도 정정 불안으로 석유 생산이 원활치 못하다. 이로 인해 원유 공급은 2주 사이에 하루 150만~200만 배럴 감소했다. 게다가 미국 내 셰일가스 생산은 지난해 정점보다 9%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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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파괴력은 컸다. 16일(현지시간) 뉴욕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3% 뛰어 배럴당 47.72달러를 기록했다. 17일 온라인거래에서는 48.31달러까지 올랐다. 런던 시장의 브렌트유는 16일(현지시간) 48.97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골드먼삭스는 지난해 9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해 유가 약세를 견인한 대표적 비관론자다. 이 예측은 올 2월 유가가 배럴당 26달러대로 떨어질 때까지만 해도 적중하는 듯 했다.

그러나 유가는 3월부터 반등을 시작, 30달러 선 위로 복귀했다. 그때도 골드먼삭스는 요지부동이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추가 하락을 막기엔 너무 늦었을지 모른다”며 “(너무 빠른 유가 반등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랬던 골드먼삭스가 돌아서 ‘재균형’을 언급한 건 유가 바닥이 배럴당 20달러라는 입장을 거둬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골드먼삭스는 시장 동향만 살피는 금융회사가 아니다. 북미 7위의 가스 유통업자로, 거래량은 엑손모빌이나 셰브론을 능가한다. 원유 시장 참가자들이 골드먼삭스의 전망을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골드먼삭스는 올 하반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3월 전망치(배럴당 45달러)보다 5달러 높였다. 다른 IB들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JP모건의 브루스 카스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골드먼삭스 의견에) 동의한다. 내년쯤에는 배럴당 40~50달러 선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월가의 IB들은 향후 유가 상승이 제한적이라는 쪽에 베팅하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 같은 고유가 시대 복귀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이유가 있다. 중동에선 여전히 물밑 증산 경쟁이 한창이다. 서방의 경제 제재에서 풀린 이란은 시장점유율 회복을 위해 증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2년간 수직낙하를 거듭했던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대에서 바닥을 다지는 양상이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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