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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안보이는 방패망"첩첩"|"일수입개방"의 허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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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시장개방률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문제는 수입이 허가됐다해도 까다로운 법률망과 절차가 실제적으로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든지 팔라고 문을 열어놓고 관세도 낮추었는데 못판다면 어쩔수없지 않느냐는 일본의 주장은 구석구석 퍼져있는 촘촘한 그물을 보면 팔래야 팔수가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되어있다.「나까소네」 수상이 TV에 나와 외래품을 많이 사라고 호소(?)하기보다는 수입을 가로막는 법령부터 손을 봐야한다는 비판이 일고있다.
수년전 일본의 한 자동차판매업자가 서독의 고급승용차 벤츠를 들여다 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게 간단치 않았다.
수입해온 차를 그대로 팔다가는 약사법과 고압가스취체법에 제까닥 걸리기 때문이었다.
벤츠의 경우 뒤트령크에 구급상자와 소화기가 달려있는데 일본법률에 따르면 약품은 허가없이는 수입판매가 불가능하고, 소화기는 고압가스취체법에 따라 검사에 합격치 못하면 판매가 금지돼 있다.
『벤츠는 원래 구급상자와 소화기가 붙어있고 구미에서는 그대로 팝니다』고 항의해도 허사. 결국 이를 떼어내버리고 판매할수 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예.
일본에 의료기기를 수입하는 회사의 임원은 약사법에 따라 건강진단서를 첨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의료기기 수입회사의 임원쯤 되는 사람이 마약중독등 부적격할 경우 곤란하다」 는게 일본 후생성의 얘기지만 도대체「임원이 설사 마약중독이라해도 이미 판매되는 제품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 는 비판이 일본안에서 조차 나오고 있다.
관세를 인하하고 수입을 촉진시키겠다해도 그물망처럼 퍼쳐있는 규제의 법령이 국제기준과는 동떨어지게 까다로와 수입의 길을 막고있는 셈이다.
이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미네럴워터「세비앙」을 일본에 팔기위해서는 프랑스 국내에서만 장장 6백km의 여행을 해야한다. 살균을 하기위해 생산공장에서 3백km 떨어진 열처리공장에 갔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미네럴워터는「물」이아니라 「청량음료수」로 분류된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청량음료수는 섭씨85도의 고열에 30분간 살균을 해야만 하게끔 돼있다.
그러나 미네럴워터의 고열살균을 의무화시킨 나라는 오직 일본뿐. 오히려 미네럴워터를 끓일경우 성분이 변해 제맛을 손상시킨다고 꺼리는 형편이다.
결국 일본수출을 위해 따로 열처리공장을 가져야될뿐 아니라 용기도 열에 약한 값싼 염화비닐등을 쓸수가 없어 값은 비싸지게 마련이다.
결국 일본이 미네럴워터를「청량음료수」로 보는한 살균을 위한 여행은 계속될 판이다.
그러나 이정도는 식품전체로 볼때 빙산의 일각이다. 식품위생법이라는 까다로운 철책이 쳐져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품위생법은 수입식품의 성분과 제조방법을 제출하도록 의무화시키고 있다.
수입업자들은 새 식품을 수입할때 여기에 든 각종 식품첨가물과 제조방법등을 제출해야하는데 기업비밀이 새는것을 꺼리는 외국메이커들이 이에 잘 응하지않을것은 자명한 사실. 결국 수입을 못하거나 또는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2∼3개월은 후딱지나가 버린다.
게다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WHO (세계보건기구) 가 사용을 허가한 술빈산같은 식품첨가물을 일본에서는 허가치않는 경우마저 있다. 물론 명목은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한다는 것인데 다른나라에서는 괜찮은 것을 유독 일본에서만 까다롭게구니 말썽이 안일수가 없다.
화학물질의 경우에는 「화학물질심사및 제조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 (약칭· 화번법)」 에 의해 갖가지규제를 받는다.
이에 따르면 연간 1백kg이하의 새로운 화학물질을 들여올때는 수입신고서만 내면되는데 그기간이 3, 7, 11월의 각1∼10일동안, 즉 연간 30일에 불과하다. 그기간외는 신고도 안받는다.
일본안의 기업도 새 화학물질을연간 1백kg이하 제조할 경우에는 신고기간이 마찬가지여서 겉보기에 공평한것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간단히 말해 일본기업은 고객의 주문이 있을경우 일단 납품을 하고 신고는 그 기간에 가서 따로 해도 탈이 없지만 수입물품의 경우는 신고를 안하면 반입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주문을 받아도 신고기간이 아니면 도저히 납기를 맞출수가 없다.
또다른 「까다로움」의 예를 들어보자.
승용차수입에 대해 일본의 각종규제는 상당히 완화되어 왔지만 작은부분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문제가 적잖다.
일본의 도로운송차량법에 따르면 브레이크등은 빨간색, 방향표시등은 노란색으로 규정돼있다.
미국은 양쪽 다 빨간색. 결국 일본에 수입된 미제차는 방향표시등을 바꾸어야만 팔수가 있는데 종류가 다양한 차종마다 맞는 부품을 사려니 이 비용이 대당6만∼7만엔이나 먹힌다.또 미국차에는 없는 주차등을 일본에서는 의무적으로 달아야하는데 이 비용도 적잖다.
물론 수출하는 미국메이커들이 그만한 배려도 못하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유독 일본의 요구를 맞추기 위해 추가 코스트를 부담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물음에도 일리가 있다.
수속상의 까다로움도 많다. 일본세관의 근무시간은 하오5시까기로 이 시간이 넘어 화물을 부리려면 관세법에 따라 세관장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결국 하오5시이후 도착하는 물건은 하나하나 항공회사는 물론 기체번호·도착시간·적재화물의 내용을 적은 허가신청서 2통을 세관에내 허가를 얻어두어야한다.
이 자체만도 큰일인데 비행기가 연착이라도· 하면 서류를 죄다 새로 써야만 한다.
지난1월 제1회 미일정보기기협회가 열렸을때 미국대표가 전화기를 예로 물어 일본을 비판하고 나섰다.
즉 일본에 전화기를 팔려면 전기통신 사업법 전기용품 취체법, 공업표준화법등에 따라 5개의 품질검사를 받아야하고 그 하나하나마다 합격판정을 받은 마크를 붙여야한다는것. 결국 미국이 UL(보험회사단체의 규격)마크만 붙이는데 비하면 쓸데없이 까다로운 절차라는 비난이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일본안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품질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것은 가정용품 품질표시법, 부당경품류및 부당표시방지법, 식품위생법, 약사법등 가지가지인데 이들 모두가 일본어로 생산국과 재질등 품질표시를 불이도록 요구하고있다.
결국 이작업에도 적잖은 가욋돈이 들어가 가격경쟁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통관상의 까다로움도 지적된다. 수출용 자동차에 쓰이는 윈도의 글래스와 가죽제품을 수입하는 한 업자는 『5억엔의 관세를 줄이려면 2억엔의 경비가 든다』고 지난4윌 일본통산상이 수입· 확대를 위해 업계와 가진 간담회에서 지적했다.
수출용 원자재는 수출이 되면 관세를 돌려받는것은 당연한데 문제는 사용하고 남은 유리조각과가죽 자투리까지 그대로 보관해두었다가 이것이 일본내로 새나가지 않았다는 증명을 해야 관세를 돌려받을수 있는 번잡한 수속이라는것. 이 회사가 연간 5억엔의 관세를 되돌려받으려면 자투리 보관에 2억엔이 든다는게 이 업자의 지적이었다.
결국 정부에서 관세를 인하하고 수입촉구를 아무리 내세워봐야 이처럼 단단히 쳐져있는 그물망을 새로 고쳐짜지 않는한 일본의 수출노력은 공념불에 지나지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박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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