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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갑상선암이 안 걸리는 줄 알 았지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필자는 갑상선암에 있어서는 "약한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어라" 하고 강조하고 강조한다. 정말로 그렇다. 대체로 남자들의 갑상선암은 예후가 여자보다 나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술되어 있다.

왜 그럴까? 남자의 갑상선암은 처음부터 여자보다 성질이 고약한 암세포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것보다는 남자가 여자보다 진단이 늦어져 그럴 것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임상에서 남자환자가 여자보다 진단이 늦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남자는 자기몸의 변화에 대하여 여자보다 무심하다. 괜찮겠지 하고 넘긴다.

2. 병이 생기면 이를 숨기려는 본능이 있다. 가족에게까지 숨기려 한다.

3. 해부학적으로 후두연골(아담스 애플)이 여자보다 튀어 나오고,목근육이 발달되어 갑상선에 혹이 생겨도 잘 인지되지 않는다.

4. 직장일 때문에 진단받을 시간이 없다.

5. 남자는 갑상선병에 잘 안 걸린다고 생각한다.

오늘 수술한 이 61세의 남자사람은 병기로 따지면 4기에 해당하는 환자다. 지난 7월초 처음 진찰할 때 환자의 자료를 보지 않고도 "어이쿠, 엄청 심하다. 어쩌다가 이렇게 키워서 왔노?"하는 생각이 들었던 환자였다.

오른쪽 갑상선부위가 불룩하게 보이고 양쪽 옆목이 울퉁불퉁 종양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지 온 초음파 영상에는 엄청 큰 종양이 오른쪽 갑상선을 완전히 점령하고 있고, 왼쪽 갑상선에도 이 보다는 작지만 여러개의 종양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양쪽 옆목에는 낭종(물혹)화된 전이 림프절들과 그렇지 않은 림프절들이 마구 뒤엉켜 있다. "햐~~, 대단하구만, 양쪽 Level II, III, IV, V 들이 완전히 점령 당했네...대전투가 되겠다. 더 퍼지기 전에 빨리 서둘러야 겠네"

빨리 서둘러 잡은 수술 D-day가 오늘인 것이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와 얘기를 나눈다.
"아니, 기록에는 갑상선에 이상이 발견된 것은 5년 전이었다고 되어 있는데 그동안 치료를 받지 않고 뭘 하셨어요?"

"네~, 5년전에 내과에서 뭐라 그러긴 했는데 남자는 갑상선 병이 안 걸리는 줄 알고 그냥 두었지요.

그냥 후두에 변형이 좀 되었나 보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었군요. 남자도 갑상선암에 걸리지요, 여자보다는 4:1로 적게 걸리기는 하지만요. 적게 걸리는 대신 경과는 여자보다 나쁜 걸로 되어 있어요. 어제 말씀 드렸듯이 목 전체에 림프절 전이가 심해 이걸 다 제거하고 나면 부갑상선으로 가는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수술후 손발이 저릴 수 있어요. 비타민-D와 칼슘을 평생동안 복용해야 될지도 몰라요. 물론 안 생기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아이고, 교수님만 믿겠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수술은 그야말로 폭풍우속에서 8000계단 올라가는 태산 등반처럼 힘든 대장정이었지만 큰 이벤트 없이 무사히 끝났다. 세상에~~, 요즘 세상에 이렇게 심하게 되어 병원을 찾다니....

5년전 초기에 진단되었다면 이 고생 안하고 간단히 고칠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말이지....

하긴 무슨 의사 연대 말대로 한다면 모든 갑상선암 환자는 이 정도가 되어야 진단하고 수술해야 된다는 소리가 아닌가.

한번만 이런 환자를 보면 그런 철 없는 소리를 못할 터인데 말이지....

수술(갑상선전절제술+중앙경부청소술+ 양츠 옆목림프절 청소술)이 끝나고 수술조수로 들어온 닥터 김이 말한다.

"교수님, 남자 환자가 경과가 나쁜 이유는 진단이 늦게되는 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남성홀몬이 나쁜 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지만 확실히 연구된 것은 아직 없어요.

여성의 갑상선암을 보면 폐경기 이후 에스트로젠이 적게 나오고 남성홀몬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노년쪽으로 가면 경과가 나쁜 것을 볼 수 있는데, 여성홀몬과 남성홀몬이 갑상선암경과에 무슨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생각은 들지만 아직 규명된 것은 없어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지......아무튼 암은 아직 연구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어요.

근데 변하지 않은 철칙은 암치료의 원칙은 초전박살이라는 것이지...기다렸다가 커지고 난 다음에 치료하라는 것은 불길이 번지고 난 다음에 불을 꺼도 된다는 소리와 똑 같은 소리지. ... 오늘 수술한 환자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야"

수술 후 병실에서 환자를 만난다. 좋다. 그렇게 큰 수술을 받았는데도 얼굴 표정이 좋다.

가장 우려하던 손발 저림이 없다. 칼슘 수치도 정상범위내에 있다. 그러나 부갑상선 홀몬 수치는 정상보다 약간 떨어져 있다. 이정도 수준이면 며칠가지 않아 정상수치안으로 진입할 것이다.

"수술 잘 되었습니다. 한 2~3일만 고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환자와 부인이 너무 고마워 한다."감사합나다. 감사합니다"

병실을 나오면서 생각한다.

"유방암도 남자에서 생길 수 있는데.... 하물며 갑상선암이 남자에게는 잘 안생긴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에휴..."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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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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