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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 리포트] 시카고대, 컬럼비아·스탠퍼드대와 동급…신자유주의 여기서 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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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줏빛 지붕과 회색 벽돌.아이비가 어우러진 시카고대 캠퍼스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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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미국침례교육협회(American Baptist Education Society)와 ‘석유왕’ J.D. 록펠러의 기부로 설립된 시카고대는 순수 학문에 집중해왔다. 특히 경제·정치학 등 사회과학 분야와 물리학 분야는 세계 최고로 꼽힌다. ‘시카고 학파’라 불리며 노동시장 유연화, 규제 완화 등을 주장하며 20세기 말 세계 경제를 주도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엔리코 페르미 교수가 설립한 ‘페르미 연구소’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와 함께 세계 최고의 입자물리연구소로 손꼽힌다.

시카고대 학교 정보 University of Chicago
지역
: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구분: 종합대(사립)
설립연도: 1890년
학제: 학사(4년제)와 석·박사
학기 구분: 1년에 3학기(4~6월 봄학기, 10~12월 가을학기, 1~3월 겨울학기)
학부 총 학생 수: 1만5312명
학부 학생 구성: 미국 현지 학생(77.4%), 중국·한국·캐나다 등 국제 학생(13.34%)
교수 1인당 학생 수: 4명
개설학과: 학부는 사회대·물리대·인문대·생물대·신학대 등 5개 단과대, 대학원
은 사회대·인문대·생물대·물리대 등 4개 대학원과 의대(Pritzker)·비니지스대
(Booth)·법대·신학대·공공정책대·사회보장경영대 등 6개의 전문대학원 운영
학비: 1년 5만3428달러
기숙사비: 1년 1만4205달러
홈페이지: www.uchicago.edu/
주소: 5801 South Ellis Avenue Chicago, Illinois 60637
전화번호: 773 702 8360


학교 표어부터 ‘학문적 성취’ 내세워
세계 10위 안에 드는 연구중심대학
노벨 경제·물리학상 57명 등 총 80명 수상

교수당 학생 4명, 권위 내려놓고 열띤 토론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12년 동안 강단에서
캠퍼스 앞엔 미시간호…350개 동아리 활동

‘지식이 불어나고 또 불어나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지리라’(Crescat scientia, Vita excolatur). 시카고대의 표어다. 표어의 내용처럼 시카고대는 ‘학업적 성취’를 제1의 미덕으로 여긴다. 시카고대는 2016 US뉴스&월드리포트 대학평가에서는 세계 10위, 미국 내 대학으로는 컬럼비아대·스탠퍼드대와 함께 공동 4위를 기록했다.

재학생들이 농담 삼아 부르는 시카고대의 별명은 ‘where fun comes to die’(즐거움이 죽는 곳)이다. 1년에 3학기를 소화하는 빡빡한 학업 일정, 매주 다가오는 쪽지시험과 에세이, 하루 평균 공부량 7시간 때문이다. 이러한 시카고대의 특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강의실 안이다.

1학년부터 빡빡한 기초 이론 토론 수업

‘기승전이론.’ 영문·음악학을 복수 전공하는 3학년 박지예(22)씨는 시카고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박씨는 “음악 전공수업의 경우 실습으로만 진행되는 수업은 거의 없다”며 “음악 이론이 처음 확립되기 시작한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이론과 역사를 모두 배우는데 이 중 음악인류학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3학년 김찬울(22)씨 역시 “이론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끊임없이 배운다”고 말했다. 경제·행정·통계·수학 4가지를 전공하는 김씨는 “행정학을 배울 때는 정치의 원형을 배우기 위해 플라톤에서부터 수업을 시작했고, 경제학 수업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 데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수업은 토론으로 진행된다. 기초 교양수업의 경우 수강 인원은 15명 내외이며 전공수업도 30명을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초 교양수업에서 교수는 토론의 진행자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전공수업은 교수의 강의로 시작되지만, 마무리는 역시 토론이다. 김찬울씨는 “거시경제학 수업 토론 시간은 교수님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 설명하려는 학생과 그것을 반박하는 교수님의 논변으로 진행됐다”며 “강의 시간보다 토론 시간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면서 더 많이 배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카고대의 1년은 3개의 학기로 이루어져 있다. 한 학기는 10주. 다른 대학에서 15주에 걸쳐 배울 내용을 압축적으로 가르친다. 이 때문에 거의 매주 시험을 치르고 에세이를 작성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는 노원재(22)씨는 “매주 과제를 하기 위해 쏟는 시간이 20시간이 넘는다”며 “도서관은 주말에도 늘 학생들로 붐빈다”고 말했다. 김찬울 씨는 “과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평균 새벽 2~3시”라며 “24시간 운영되는 중앙도서관에는 새벽까지 늘 학생들로 붐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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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 학생들이 캠퍼스 잔디밭에 둘러앉아 토론하는 모습.

노벨상 수상자 대거 포진한 일류 교수진

시카고대 교수진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경제학과의 제임스 헤크먼 교수는 200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다. 그는 여전히 학부생들보다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낸다. 라스 피터 핸슨 교수는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어떤 주제가 떠오르면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설명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김찬울씨는 “‘연방준비제도의 두 권한’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가 끝나고 복도를 걸어가는 데 교수님이 나를 붙잡고 ‘두 권한이 어떻게 하나로 연구될 수 있는가’에 대해 30분간 설명을 했다”고 말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약 12년간 헌법학 강의를 했다.

시카고대는 난해하고 복잡한 시험으로도 유명하다. 학생들은 우스갯소리로 “모든 시험이 풀 수는 있다(Doable)”고 말한다. 단순한 암기 능력이 아닌 생각의 깊이를 측정하려는 시카고대 시험에서는 답안은 모두 작성할 수는 있지만 명쾌한 해답을 도출해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다른 학교에서 평균적으로 학점 3.7을 넘어야 수여하는 ‘Dean‘s list’(성적우수상)도 시카고대에선 3.3만 넘기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A를 맞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경제학과 심리학을 복수 전공하는 최여비(22)씨는 “심리학 수업의 경우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작성한 보고서를 요구한다. 현재 7개월 된 유아들의 EEG 뇌파를 연구하고 있는데 단순히 수업에서 들은 것을 외우는 방식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시험이다”라고 말했다. 김찬울씨는 “미시경제학 수업의 시험 문제가 ‘신을 믿는 것은 합리적이다’라는 명제에 대해 맞는 말인지 틀린 말인지를 쓰는 것이었다”며 “맞으면 왜 맞고 틀리면 왜 틀린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문제가 나왔다”고 전했다.

학점에 대한 교수들의 기준 또한 엄격하다. 김찬울씨는 “수업에서 2등을 하더라도 반 전체 수준이 과거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교수님이 B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절대평가 수업이라고 A를 몰아주는 경우는 시카고대에선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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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 바로 앞에 있는 미국 5대호(湖) 중 하나인 미시간호(湖).

평균 2개 동아리 활동하며 스트레스 풀어

‘where fun comes to be resurrected’(재미가 부활하는 곳). 한 동아리 단체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을 하며 활기를 찾는다는 의미다. 시카고대는 ‘동아리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동아리들이 학교의 든든한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활동한다. 시카고대는 동아리를 RSO(Registered Student Organization)라 부르는데 현재 활동 중인 RSO 수는 약 350여 개에 이른다.

새 학기가 되면 대규모 동아리 박람회(RSO fair)가 열리며 이곳에서 원하는 동아리를 찾지 못하면 본인이 직접 원하는 동아리를 만들 수도 있다. 신설된 동아리에도 학교가 재정 지원을 한다. 노원재 씨는 “시카고 대학생들은 바쁜 학업 속에서도 평균 2개의 동아리 활동을 한다”며 “공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적성을 개발해나가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시카고대는 동아리 활동 외에도 학생들을 위해 ‘조금 특이한 펀드’(Uncommon Fund)를 운영한다. 학생들이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제도다. 올해 통과된 아이디어는 ‘도서관을 하루 동안 클럽으로 바꾸는 이벤트’다.

고딕 양식의 건물과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어우러진 캠퍼스 건물도 시카고대의 자랑이다. ‘록펠러 교회’ ‘하퍼 도서관’처럼 담쟁이덩굴로 둘러싸인 고딕양식의 건물이 캠퍼스의 주된 풍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로 ‘부스 비즈니스 스쿨’ 같은 모던한 현대적 양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또한 캠퍼스 서쪽으로는 140만㎡ 크기의 워싱턴파크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미국 5대호(湖) 중 하나인 미시간호(湖)가 펼쳐져 있다. 박지예 씨는 “시카고대의 건물들은 이론을 탄탄히 가르치는 교육 철학을 닮아서인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학맥 지도
밀턴 프리드먼, 칼 세이건 … SK 최태원, LG 구본준도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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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윗줄 왼쪽부터) ‘시카고 학파’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페르미 연구소’를 세운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 『코스모스』 저자 칼 세이건, 『문명의 충돌』 저자 새뮤엘 헌팅턴, 최태원 SK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자은 LS전선 사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시카고대는 지금까지 9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한 ‘시카고 학파’는 무려 28명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탄생시켰다. 시카고학파의 대부인 밀턴 프리드먼은 “노벨상을 받으려면 시카고대를 나와야 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도 29명이다. 세계적 입자물리연구소 ‘페르미 연구소’를 설립한 엔리코 페르미가 시카고대 핵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노벨상 수상자 외에도 사회 각 분야의 ‘파워 엘리트’ 가운데 많은 수가 이 대학 출신이다. 『문명의 충돌』 저자인 새뮤엘 헌팅턴도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볼리비아의 전 대통령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와 엘살바도르의 전 대통령 알바로 마가냐 등도 시카고대 출신이다.

재계에는 전 세계은행 총재 폴 월포위츠,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 질레트 회장 제임스 킬츠, 전 IBM 회장 존 오펠, 파라마운트 픽처스 회장 셰리 랜싱, 전 모건 스탠리 회장 필립 J. 퍼셀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코스모스』로 퓰리처상을 받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 튜링상을 수상한 수학자 리처드 해밍, 필즈상 수상자인 폴 코언 등이 시카고대 출신이다.

국내에도 쟁쟁한 시카고대 학맥이 있다. 최태원 SK회장(경제학 학사 및 석·박사 통합), 구본준 LG 부회장(경영학 석사), 구자은 LS전선 사장(경영학 석사), 김영무 김앤장 법률사무소 대표(비교법학 석사), 김용학 연세대 총장(사회학 석·박사), 최혁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경영학 석·박사) 등이 시카고대 출신이다. 한국총동문회 총무를 맡고 있는 카톨릭대 경영학부 강성민 교수는 “과거에는 대학원 졸업생 위주의 동문회라 교수로 진출한 동문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학부 졸업생들이 크게 증가하며 재무·회계 분야로 진출하는 동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대 재학생이 말하는 학교생활

입학하려면 뭘 준비해야 하나
독특한 주제의 에세이가 시카고대 입학전형의 특징이다. ‘홀수는 왜 특이한가’(What’s so odd about odd numbers),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시오’(How are apples and oranges supposed to be compared) 등이 문제로 나온다. 단순한 암기 능력이 아닌 생각의 깊이와 방식을 보는 것이다. 에세이 외에 SAT 점수와 내신, 교외활동 등이 입학전형의 주요 내용이다. SAT의 경우 2300점 이상을 얻어야 하며 내신은 대다수 합격생이 상위 1%를 기록했다.

다만 평균보다 낮은 SAT와 내신성적이라 해도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혹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합격할 수 있다. 실제로 성적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초파리 연구에 관심이 많았고 그에 관한 논문도 꾸준히 써온 점을 높게 평가받아 합격한 학생도 있다.

학비·생활비 얼마나 드나
1학년은 반드시 기숙사 생활을 한다. 1년 기숙사 비용은 8892달러, 식비는 5880달러다. 이후에는 본인의 선택에 따라 기숙사 생활을 할지 자취를 할지 결정한다. 한국 학생의 경우 70%가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한다. 룸메이트와 함께 자취할 경우 평균적으로 매달 700~1000달러 비용이 들고 혼자서 생활할 경우 1300~1700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자취 생활을 할 경우 학교로부터의 금전적 지원 등은 없다.
졸업 후 진로는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은 경제학이나 통계학 혹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 따라서 졸업 후 투자은행이나 컨설팅으로 진출하는 학생들이 많다. 학교 전체로 볼 때는 취업보다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취업을 하더라도 몇 년 후 다시 대학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약 85%가 5년 이내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약 20%가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 연구중심대학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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