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중모색"... 민정당의 대야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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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총선거후 처음 열린 125회입시국회는 민정당에 현실정치의 보체를 보다 분명히 보여주고 정국운영의 험난함을 새삼 인식시켜준 것 같다. 그들이 어느정도는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던 금기와 성역의 벽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렸고 지금까지 애써구축해온 정권의 정통성과권력구조등도 세찬 도전을 받게되었다.
그러한 도전앞에서 민정당은 뭔가 뚜렷한 방향설정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막상 구체적인 대응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는 암중모색, 엉거주츰한 상태다.
12일 민정당의원총회에서 노태우대표위원은 현상황을 위기적상황으로 분석했다. 이것은 집권층이 느끼고있는 일반적인 위기감, 긴장감을 나타낸것으로 봐야 할것이다.
집권층이 쳐놓고있는 저지선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다가오는 야당측의 공세에 대응할 새로운 전략의 수립이 필요해진 싯점인 것이다.
이같은 상황인식에는 집권층내에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이 흐름을 읽고 풀어가는 시각과 대처방안에 있어서는 현격한 이견들이 드러나고 있다.
12일 의원총회에서 이종찬총무는「중앙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당의 조직이나 당원의 교육훈련에 중점을 둘때가 아니라 국회를 중심으로 민정당도 정치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야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분열·대결상을 보이는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관심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며 따라서 적절한 대비책을 갖추지 못하면 야당바람에 다시 휘말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주장은 당사무처가 들고나온 새로운 조직모델정립에 의한 당조직구축과는 다른, 당의 정치적 면모를 강화해보자는 의견들을 대변하는 소리다.
그러나 당사무처가 제시한 귀향활동지침은 중앙정치보다는 당의 조직에의한 안정을 기대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중앙정치의 중요성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당으로서의 실질적 대처방안은 조직의 정비, 정책의 개발에 둬야한다는 생각인것 같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야당측의 정치공세를 비켜버리자는 의도로도 해석할수 있겠지만 야당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것으로 봐야한다. 그러나 많은 의원들이 조직의 문제를 반드시 절실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또 중앙정치라는 것도 국회중심만을 뜻한다면 그것도 현실정치상황에 대처하기에는 폭좁은 방안일수 밖에 없다.
여야 모두가 장외와 당외의 깊은 영향아래 있는 여건에서 국회중심의 정치란 결국 정치의 축소지향일 뿐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요구에 여당이 지나치게 밀리고 있다는 반성과 지적은 민정당의 정치적 대응능력과 상관되는 문제다.
민정당이 「원만한 국회운영」에만 매달리다가 당의 확고한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은 당내외에서 강하게 제기됐고 특히당외의 불만은 어느때보다 높게울리고 있다. 금내에서 대다수의의원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눈치를보며 적극성을 띄지못하는 당지도부에 대한 실망도없지 않은것 같다.
특히 권력주변에 대한 야당측의 공격이 직귄층을 강파르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있는것도 사실이다.
국회무용론까지 제기된 지난1일의 의원총회가 그런 분위기를 대변하고있다.
이러한 당외의 긴장된 분위기를 당내에서 대변하려는 쪽에선 지난국회에서 야당의 「무례하고거침없는 요구에 밀리기만 했다고 불평하고있다.
그러나 이들도 문제제기는 하지만 어느 선에서,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대안은 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 해답이 나올수 있는 장기적인 정국운영방향을 섣불리 예측할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의 상황인식에는 기본적인제약이 따르고 있다고 봐야한다.
다시말해 야당측이 강력하게 제기할것으로 예상되는 정치현안들에 대해 스스로 분석하고 방안을 강구할수 있는 자체대응능력을·못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일부의원들이 개인적인견해표명은 하고있지만 그런견해를 합성해서 당론화하려는 노력까지는 벌이기 어렵게 되어있다.
예컨대 광주사태의 진상 재해명 과정에서 제한적 국정조사권발동의견이 일부에서 나왔지만 조사대상선정의 난점이 제기되자 그런 의견은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여건들이 민정당의 정치적 대응력을 축소하는 작용을 해왔고 그 결과 앞으로도 정치적역할증대를 기약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할수있다.
김대중씨등의 사면·복권, 개헌특위등을 야당측이 촉박한 정치현안으로 제시하고 나아가 장외투쟁가능성까지 비치고있는데도 민정당측은 적절한대꾸를 하지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미 현행헌법에의 한 88년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본인이 자숙해야 사면·복권이 될 것이라는 말이 답변이 아니냐고 말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야당측의 정치일정제시요구에 대한 답변이라고 볼수는 없다.
물론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야당측의 요구에 대한 분석과 대응노력의 전개를 역설하는 측도없진않다. 이둘은 야당이 개헌시안을 확정하고 가두로 나가 서명작업을 벌이는 경우에는 야당이 그에 대한 직접적인 국민의부담을 지게되므로 절충의 여지가 줄어들게 되고 따라서 사전대화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주장은 결코 다수의 소리가 되지 못하고있다.
실제로 사전대화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막후활동을 벌이려고해도 자체결정능력이 미흡해 그와 같은 절충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해결의 중요변수가되는 개헌등 몇가지 기본적인 사항이 민정당으로서는 거론하기 곤란한 「불변항」으로 고정되어있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어 내더라도 그 해답은 결국 현재상태의 단순변형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민정당이 계속해서 이와같은 현실적인 정치수요를 해결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민정당의 대야전략도 계속 암중모색만 거듭할뿐 효과적인 정치력발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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