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탐험(15)] 남북군사회담을 제안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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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6일부터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노동당 제7차대회에서 사업총화 연설을 하고 있다. 김 제1비서는 연설에서 불쑥 남북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노동당 제7차 대회에서 사업총화보고를 하면서 불쑥 ‘남북군사회담’을 제안했다. 제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고조된 긴장 국면과 개성공단 중단 등 강대강 국면에서 돌파구를 마련해 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김정은은 왜 남북고위급회담 아닌 남북군사회담을 던졌을까?
김정은은 한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하는 세력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이병호 국가정보원장 등 군인 출신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회담을 할 경우 현재의 긴장된 국면을 풀기 위해서는 남북군사회담이 적절한다고 본 것이다.

북한은 선군정치의 영향 탓인지 군인 대 군인으로 만나면 협상을 잘 풀린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민간 대 민간으로 만나면 서로 따지는 것이 많아져 답답함을 느낀다고 한다. 북한은 자기 논리에 강하지만 국제 정세를 해석하는 방법이 ‘우물 안 개구리’로 보일 수 있다는 열등감이 있어 내심 남북군사회담을 선호한다.

김정은은 사업총화보고에서 “우리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우선 군사당국간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남 군사당국 회담이 열리면 상호 관심사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협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지난해 8·25합의 때처럼 ‘김관진 실장-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의 만남을 통해 꼬일 대로 꼬인 남북 관계를 풀었듯이 이번에도 그런 장면을 희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은 “북한이 스스로 핵보유국을 자처하며 핵·미사일 도발 등을 자행하는 상황에서 긴장완화 등을 위한 군사회담이 필요하다고 한 것은 전혀 진정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설령 가까운 시일내 남북군사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북한은 진정한 회담보다는 자신들의 선전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그 동안 주장해 왔던 핵보유국 선전과 자신들의 핵보유가 한반도 전체의 안보를 위한 것이라고 자랑하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남북군사회담에서 핵문제를 꺼낼 가능성도 없다. 핵문제는 미국과의 문제로 간주하기 때문에 한국과는 상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김정은이 말한 ‘상호 관심사 문제들’에는 비핵화는 빠지고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핵·미사일 모라토리움(잠정 중단)’이나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테이블에 올려 놓으려고 한다.

북한이 한국과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는 얘기는 최근 들어 솔솔 회자되고 있다. 태양절(4월 15일)에 평양을 다녀 온 재미교포들의 한결 같은 이구동성이다. 경제·핵 건설 병진노선에서 핵보유국으로 선포한데다 소형화·경량화는 어느 정도 진행돼 경제에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사업총화보고에서 “경제의 어떤 부문은 한심하게 뒤떨어져 있으며 인민 경제 부문들 사이에 균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선행 부문이 앞서 나가지 못해 나라의 경제 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핵은 마음대로 됐지만 경제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돌파구로 남북대화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과 관련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의 남북대화도 어려워 보인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김정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포기시키려는 박근혜.
남북관계는 이기려는 사람과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지루한 장기전(長期戰)이 돼 버렸다. 대화만큼 좋은 것이 없는데 그것이 그렇게 마음처럼 되지 않고 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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