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진상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그 동안 몇 년을 두고 수군수군해온 광주사태 진상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망자 수 였다. 사망 직후 계엄사는 그 숫자를 1백91명이라고 공식발표 했였지만 이 사실읕 믿는 사람의 수는 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최근 광주사태의 금기가 깨어지면서 별의 별 소문이 다 돌았다.
외국신문이나 잡지들은 「소문」이라는 단서는 붙였지만 1천 명 내지 2천 명이라는 보도도 했다. 이런 간행물이 국내에서도 거리낌없이 배포되었으니 소문은 날개를 달수밖에 없다.
바로 며칠 전엔 국회의 논란과정에서 한 야당의원에 의해 광주시년보에 기록된 80년6월 광주시 사망자수가 2천 6백 27명이라는 사실이 제시되기도 했다. 여느 때의 10배도 넘는 수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7일 오후 국회 국방위의 장관보고를 통해 광주사태의 진상을 다시금 소상하게 밝혔다.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국민들은 5년 전의 악몽을 일깨우는 재율과 심통을 느꼈다.
「폭동」,「방화」, 「탈취」,「습격」,「무차별 사격」 , 「섬멸」 , 「살인」 ,「학살」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말들이 다시 귀에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픈 기억의 되새김 속에서 한가지 안도하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부가 보고한 민간인 사망자 1백 64명 이외에 사망자가 더 있다면 『언제든지 정부나국회·각 정당·각 언론기관·종교단체·사회 및 인권단체 등 어디라도 신고해 달라』고 요망한 사실이다.
진작 이런 발표를 했다면 상황은 썩 달라졌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신고가 얼마나 접수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정부로서는 숨길 것이 따로 없다면 벌써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옳다. 뒤늦게나마 그런 판단을 한 것은 「발표」의 신빙성을 위해서도 잘한 일이다.
이제야 광주사태의 한 매듭이 지어지는 인상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뭐니뭐니해도 유언비어풍조다. 이번 광주사태 진상발표 가운데도 여기저기 유언비어의 대목이 나온다. 설마 하는 유언비어들이 그 난리 중에서도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횡행한 것을 알 수 있다. 흥분한 군중들이 그런 소문을 들으면 가슴이 뛰지 않았을 리 없다.
지난 5년동안 알게 모르게 광주사태 진상발표를 요구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은 것도 실은 정체 모를 소문들 때문이었다. 우리는 언제까지 유언비어에 발목이 잡혀 전전긍긍해야한단 말인가.
정부는 이번 진상발표를 통해 신뢰구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앞으로 제3, 제4의 보고를 해야 할 사태가 없다는 보증을 할 수 없다. 정부가 요구한 대로 국민의 새로운 사실 신고가 있으면 그 진상도 주저 없이 밝혀 의혹을 제때 제때 풀어주어야 한다.
물론 광주사태의 상처는 그처럼 쉽게 아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수록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노력가운데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은 바로 국가발전의 기본이기도 하다.
국민적 비극을 막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는 여기 반복해 말할 필요도 없다.
국회는 모처럼 우리사회의 모든 현안문제 들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광주사태까지도 결국은 장외에서 양내로 끌어들여 진상보고를 듣기에 이르렀다. 정치발전이라면 발전이랄 수도 있다.
맺힌 문제, 막힌 문제, 답답한 문제일수록 이런 과정을 밟아 풀어 가는 것이 민주정치의 순리다. 매사가 그렇게만 되면 비극은 다시없을 것이다.
모든 정치인들은 바로 민주정치의 그런 긍정적인 면을 더 높이 사는 성숙된 자세로 임해야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광주사태의 막힌 문제를 하나 뚫는 노력이 그만큼이라도 이루어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광주사태거론의 「유종의 미를 기다려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