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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릴레이] ⑭ 김은희가 강민구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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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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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셰프

많은 사람이 묻는다. “여자 오너셰프라서 더 힘들지 않아요?” 힘들다. 하지만 여자라서 힘든 건 아니다. 오너셰프 레스토랑을 한다는 건 부단히 ‘독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음식은 음식대로,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매일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는데 그걸 책임지고 해결하는 게 오너셰프 역할이다. 살아남는 건 여자와 남자 간에 차이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미친 듯이 하는 것. 그게 ‘더 그린 테이블’(서울 방배동)을 7년째 끌어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아마 ‘파씨오네’의 이방원 셰프도 나와 같은 생각 아닐까. <본지 4월 18일자 20면 셰프릴레이 13회>

한식과 서양이 만나는 곳
최전선에 서 있는 셰프
내달엔 뉴요커 사로잡는다

가게를 열고 첫 2년 동안은 아침마다 울면서 화장했다. ‘이걸 내가 왜 시작했을까.’ 미국 요리학교 CIA를 졸업하고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돌아왔을 땐 두 언니의 꾐이 컸다. 각각 푸드스타일리스트와 푸드 컨설턴트인 언니들이 “우리나라 미식 문화를 높여보자”고 권했다. 세 자매가 힘을 합쳐 햇살 따사로운 이 공간에 둥지를 텄다. 안정되기까지 3년은 걸린 것 같다. 지금도 홀에 나와 손님들에게 인사드리는 건 어색하고 수줍다. 한번은 어느 회장님이 잡지에서 단골 맛집으로 ‘더 그린 테이블’을 꼽으셨는데, 한 번도 인사드린 적 없는 분이라 민망하고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CIA에 공부하러 간 2003년만 해도 요리 지망생들 사이에서 프랑스·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환상이 컸다. 지금은 유명해지려면 오히려 한식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엊그제 CIA 동문인 미국인 친구가 한국에 처음 놀러 왔다. 함께 여기저기 미식 투어를 다니는 데 프렌치 레스토랑보다 한식당을 더 좋아했다. ‘필경재’(서울 수서동)에서 육회에 문배주도 넙죽넙죽 잘 먹었고, ‘우래옥’(서울 주교동)에선 불고기와 평양냉면을 맛깔나게 해치웠다. 하긴 나 역시 외국을 가면 그 나라의 음식 문화를 접하고 싶지 굳이 프렌치·이탈리안을 고집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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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글스의 ‘파래장 먹물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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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셰프

‘밍글스’(서울 청담동)의 강민구 셰프는 이런 변화를 가장 앞장서 보여주는 후배가 아닐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지하고 예의 바른 인상이었던 강 셰프는 ‘밍글스’라는 이름 그대로 동서양이 어우러지는 파인다이닝을 추구한다. 한국 장(醬)을 베이스로 하되 일식집 ‘노부’나 스페인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서양 음식을 자기 식으로 표현한다. 그런 실력을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오픈 2년 만인 지난 3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5위에 올랐다.

요즘은 6월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코리아 NYC 디너스’ 행사 준비에 한창이란다. 영국 잡지 ‘레스토랑’이 개최하는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 시상식의 사전행사 갈라디너다. 최현석·임정식·유현수·장진모 등 ‘국가대표’급 셰프들과 함께 트렌디한 한식을 뉴요커에게 선사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그걸 대비해서 요즘 조희숙 요리연구가에게서 나물무침·장아찌 등 한식의 기본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이 땅의 식재료로 프렌치 요리를 하고 있기에 요즘 다시 한식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런 게 쌓이면서 바뀌어 갈 우리 미식 문화가 기대된다.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인연과 철학, 셰프가 주목하는
또 다른 셰프를 통해 맛집 릴레이를 이어 갑니다.



정리=강혜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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